[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88)

  • 입력 1997년 9월 4일 07시 32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14〉 거지는 상인들 사이를 돌며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루프를 둘러싸고 있던 상인들 대부분은 한 닢도 동냥을 주지 않았다. 불과 한두 사람의 상인만이 귀찮다는 듯이 반 디르함짜리나 동전 한 닢을 던져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지막으로 거지는 마루프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마루프는 주머니에서 한 움큼의 금화를 꺼내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상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어보지도 않고 금화를 한 움큼이나 주다니, 임금님이 물건을 주시듯 하는군. 여간 큰 부자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한 움큼의 금화를 얻은 거지 자신이었다. 그는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마루프를 축복했다. 그러자 마루프는 거지를 굽어보며 말했다. 『고마워할 것 없네. 내 어릴 때부터 소원이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움큼씩 금화를 나누어주는 것이었으니까 말야』 거지가 가버린 뒤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한 가난한 여인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마루프는 한 움큼의 금화를 꺼내어 주었다.그여자또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마루프를 축복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카이로에서 온 상인한테로 가면 금화를 한 움큼씩이나 얻을 수 있다는 말이 거지들 사이에 돌기 시작한 것 같았다. 마루프는 그러나 거지떼가 모여드는 것에 전혀 동요하는 빛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금화 한 움큼씩을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하였으니 그가 가지고 있던 일천 디나르의 금화는 삽시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마루프는 두손을 철썩철썩 때리면서 한탄하는 투로 말했다. 『알라 이외에 신 없고 모하메드는 신의 사도로다! 이 도성의 주민들은 살림이 궁색한 모양이군.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왔을 텐데. 내 짐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고, 내 수중에는 이제 한 닢의 금화도 없고, 그런데도 나는 거지한테 졸리면 못견디는 성질이니…, 이제 또 거지들이 몰려오면 무어라 대답한단 말인가?』 마루프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려니까 상인 두목이 말했다. 『또다시 거지들이 몰려오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알라께서 너희에게 나날의 양식을 베풀어주시리라」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마루프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건 내가 할 짓이 아닌 것 같소. 알라의 이름을 빌려 가난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만큼 강심장을 가졌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을 것이오. 짐이 도착할 때까지 단돈 일천 디나르만 있어도 가엾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나누어줄 수 있을 텐데』 듣고 있던 상인 두목이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빌려드릴 테니까요』 이렇게 말한 상인 두목은 하인을 시켜 일천 디나르의 돈을 즉시 가져오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리와 마루프의 「작전」은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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