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18〉
바라보면 이 작은 역은 기차를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래된 옛 이야기를 담을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 위해 밤새 뚝딱거려 만든 세트와도 같다. 철길 옆엔 일부러 그렇게 구해서 심은 것 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철길쪽으로 몸을 굽히고 서 있다. 어느 드라마에도 나왔던 소나무라고 했다. 쫓기는 한 여자가 바다를 배경으로 그 소나무에 자신의 몸을 가리고 선 모습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어서 나무의 이름에도 배우의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듯 차례로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추워요』
햇살이 바다와 소나무 숲 사이로 고루 퍼진 다음에도 바닷바람은 여전히 쌀쌀했다.
『어딜 들어가지』
역사 뒤편의 바다 카페도 그 안의 풍경까지 드라마 세트 같다.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음식과 차를 파는 카페였다. 탁자 마다에 낙서장 같은 방명록이 놓여 있었다. 이곳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자기의 이름과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사랑의 맹세 또한 많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다 지켜졌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런 흔적을 남길 때만은 두 사람의 마음이 붉은 해처럼 뜨거웠을 것이다.
『운하씨는 안 써요?』
『뭘 쓰지?』
『그냥 운하씨 마음을 쓰면 되잖아요』
그녀가 백에서 만년필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냥 내 마음에 쓸게. 내 마음의 바다 안에 가장 큰 글씨로』
『뭘 썼는데요』
『채서영』
그는 탁자 위로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함께 창밖 가득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왼편으로 바다가 있었고 오른편으로 절벽 같은 산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영화 페드라의 마지막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인지. 단순히 해안 단구의 절벽과 그곳에 와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글: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