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민원 외면한 趙시장 행차

  • 입력 1997년 3월 5일 19시 46분


[하태원 기자] 5일 오전9시반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금화시민아파트에 趙淳(조순)서울시장이 나타났다. 지은 지 28년 된 이 낡은 아파트는 95년 4월 안전진단에서 「붕괴우려 있어 즉각 철거 해당」이라는 E급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도 9가구의 미이주민들이 있는 곳. 언덕빼기의 비스듬한 건물은 여기저기 금이 가있고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땜질까지 돼있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조시장의 행차는 4∼6일을 시범안전점검의 날로 잡고 서강대교 성수대교 등의 현장을 둘러보기로 한 계획의 일환. 성수대교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아픔을 겪은 뒤 『시정의 제1과제로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한 서울을 구현하겠다」』고 선언한 조시장으로서는 해빙기를 맞아 직접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의욕에 찬 방문이었다. 시공무원들은 미이주민들이 몰려나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주민들은 시장의 모습을 멀리서 기웃거릴 뿐 가까이 오려하지 않았다.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대문구청과 시청직원들이었고 이 지역 출신 金相賢(김상현·국민회의)의원과 시의원들의 모습도 몇몇 눈에 띄었다. 시장이 28동건물 옥상에 올라가 시민아파트일대를 둘러보고 있을 즈음 건물아래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진단 결과 C급판정을 받은 건물에 사는 한 주민이 『우리건물은 건성으로 검사해놓고 재검사를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며 『시장님이 직접 우리 사정을 살펴 재검사를 지시해달라』고 외쳤기 때문.그러나 현장의 누구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서둘러 건물을 둘러본 시장은 『수고 많았다』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황급히 행사장을 떠났다. 주민과의 대화시간은 아예 잡혀있지 않았다. 시장의 순시를 멀리서 바라보던 한 시민은 『현장에 왔으면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야지 웬놈의 현황보고야. 보고는 사무실에서나 받지…』라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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