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금융부정사건에 대해 국회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할 말은커녕 국회도 한통속이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국회가 한보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국정감시기능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던 사실이 본보의 국회속기록 분석결과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 조사에 따르면 한보철강 당진제철소가 착공된 지난 91년 이후 96년까지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이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등에 요구한 한보관련자료는 1백9건이나 되었다. 그러나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정작 질의를 한 경우는 46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당진제철소 공사와 직접관련된분야에 대해서도 34건의 자료를 요청했으나 질의는 9건뿐이었다.
그처럼 많은 자료를 국회의원들은 무엇때문에 요구했는가. 한보그룹의 사업과 은행의 거액대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어떤 낌새를 느꼈기 때문에 그처럼 많은 자료를 요청했을 것이고 자세한 자료를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추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정작 질의때는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어딘지 수상쩍고 아리송하다. 문제점을 바로 집어낼 능력이 없었거나 아예 국정감시책임은 뒷전으로 미루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국회마저 한통속으로 한보비리를 눈감아 준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번 한보의혹의 본질은 한보철강의 무모한 부지매립허가나 기술도입승인 등 사업의 인허가 과정과 천문학적 규모의 은행돈이 집중대출된 배후에 권력층의 외압 등 정경유착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를 벌인 의원들은 자료만 잔뜩 받아 놓고 정작 질의때는 의혹캐기에 입을 다물었다.
한보그룹에 거액의 은행돈이 집중대출되기 시작한 94년 국정감사때는 한보관련 질의가 단 1건도 없었다고 한다. 이같은 국정감사 태도 때문에 정경유착(政經癒着)의혹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국회와 정치권이 이러니까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기지 않고 정부와 기업이 비리를 마음대로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고서야 국회가 국정감시기관이며 국민의 대의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부와 기업,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관계가 근절되지 않고는 이 사회에서 부패를 척결할 수 없다. 정경유착관계는 정치권 부패의 핵심고리다.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기업과 야합하여 비리를 눈감아주는 한 부패와 비리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번 검찰수사의 핵심과제는 한보의혹의 본질인 외압여부와 정경유착관계를 빠짐 없이 가려내는 데 있다. 본보의 한보국정감사 분석은 정치권 수사의 단서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