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鍾求기자」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앞을 못본다면 어떻게 될까. 거울 속의 자신과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가족의 얼굴과도 이별이다. 안일권목사(51). 그의 삶은 말 그대로 빛과 어둠의 극명한 엇갈림이다.
한국외국어대 졸업, ROTC출신 장교, 무역회사 직원, 결혼, 의류공장 사장…. 순탄한 삶이었다. 77년 어느 가을날 아침 눈을 떠보니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변해버리기 전까지는. 좋다는 약치고 안먹어 본 게 없었지만 6개월만에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몰랐다.
그러나 눈먼 그가 8년만에 빛을 되찾았다. 교도소에서였다. 85년 부도를 내 9월형을 받고 장애인방에 수감된 직후 육신의 눈 대신 마음의 눈을 떴다. 실명한 뒤인 81년부터 신앙을 가졌으나 진정 마음의 믿음은 아니었다. 「네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는 성경말씀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감옥살이만도 참기 힘든 고통인데 거기서도 장애인들은 「특별대접」을 받았다.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사회에 나가도 기다리는 것은 따가운 눈총과 따돌림뿐인 장애인. 그는 기도했다. 『이들이야말로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이들의 아픔과 설움을 달래는데 삶을 바치겠습니다』
출소하자마자 그는 바로 총신대 신학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졸업도 하기 전에 세계십자가선교회를 만들어 교도소내 장애인들의 선교에 나섰다. 91년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과 집단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경기 가평군 상천리 생명의 교회에서 출감한 장애인, 알코올 마약중독자, 본드흡입 청소년 등 30여명과 함께 살고 있다. 두 평도 안되는 좁은 방을 알코올중독자와 나눠 쓴다. 가족은 서울에 살고 부인이 가끔 들른다.
『2백40여명이 이곳에서 3개월간의 선교치유과정을 거쳐갔어요. 그들 중에는 지금 목사 전도사가 된 사람도 있고 장애인이나 무의탁노인 시설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가 하는 일은 크게 세가지. 교도소내 장애인선교와 알코올 마약중독자 치료, 행려병자 치료가 그것이다. 그가 꾸준히 찾는 교도소만도 청주 대전 영등포교도소와 천안소년교도소 등 10개가 넘는다. 94년부터는 공주치료감호소 의사들의 요청으로 마약중독 재소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으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수술을 주선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