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0)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6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30〉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의 고백을 듣고 있던 여자는 혼란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몹시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내시 쪽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이분께 나의 말을 전하도록 해」 그리고 그녀는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저에게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내시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섣불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 잘못인 것 같았습니다. 한 달 이상을 두고 저에게 빚 독촉을 했던 상인들은 이제 그녀가 빚을 깨끗이 청산하였으므로 모두 돈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남겨진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교제의 줄이 끊어지고 만 것을 슬퍼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녀에 대한 기다림으로 저는 날이면 날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내시가 찾아왔습니다. 「오, 나리께서 오셨군요」 저는 이 사랑의 전령사를 맞아 후히 대접한 뒤 넌지시 여주인의 동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내시는 짐짓 위엄을 부리며 반문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이 대체 어떤 분인가 하는 걸 알기나 하고 눈독을 들이는 거요?」 「아니오. 그분은 대체 누구이며 어디 사는지, 그리고 무얼하는 여잔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시는 한껏 권위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분은 말이오, 교주 하룬 알 라시드의 왕비께서 사들인 노예로서 하렘의 시중을 드는 분이랍니다. 그런데 왕비는 그 분을 총애하여 자유로이 출입하는 허가까지 내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기가 죽을 대로 죽었습니다. 왕비의 총애를 받는 하렘의 여자라면 나 같은 가난한 상인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오, 정말이지 당신은 행운이 있는 사람이오. 우리 주인께서 당신 때문에 상사병에 걸렸으니까요」 내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만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난 번에 당신이 한 사랑의 고백을 듣고 그 분은 너무나 기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왕비를 만나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죄다 털어놓고 당신과 결혼시켜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그 젊은이를 직접 한번 보지 않고는 허락할 수 없다, 만일 그 젊은이가 네 남편으로 부끄럽지 않다면 짝을 지어주마, 하고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실은 당신을 몰래 궁전으로 데리고 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는 참이랍니다. 일이 잘 되어 몰래 들어갈 수만 있다면 당신은 소원대로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여 사전에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당신의 목은 달아날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소?」 내시가 이렇게 묻자 저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어떤 모험이라도 하겠소』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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