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은 정말 ‘급’이 떨어지는 블로커일까? [발리볼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1일 1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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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C인삼공사 정호영(왼쪽)이 현대건설 양효진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는 장면.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KGC인삼공사 정호영(왼쪽)이 현대건설 양효진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는 장면.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호영(22·KGC인삼공사)은 프로배구 팬들이 흔히 생각하시는 것보다 좋은 블로커일 확률이 높습니다.

네, 정호영이 31일 경기 전까지 세트당 블로킹 0.547개로 9위에 그치고 있는 선수라는 것 저도 압니다.

이 부문 선두인 한수지(34·GS칼텍스)는 한 세트에 블로킹을 평균 0.766개 잡아내고 있습니다.

이 기록만 보면 정호영의 블로킹 능력은 A급 블로커 70%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블로킹 능력은 꼭 블로킹 성공 개수로만 따져야 하는 걸까요?

프로배구 여자부 블로킹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수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프로배구 여자부 블로킹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IBK기업은행 김수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현재 블로킹 1위 한수지와 2위 김수지(36·IBK기업은행·세트당 0.750개)가 남긴 기록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블로킹 성공 개수는 한수지가 72개로 김씨 성에 같은 이름을 쓰는 선수(66개)보다 6개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효 블로킹’은 김수지(165개)가 한수지(138개)보다 27개가 많습니다.

또 김수지(105개)가 한수지(149개)보다 ‘블로킹 실패’도 적습니다.

블로킹 능력을 따져 보려면 뭔가 고민해야 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김수지는 못 이깁니다.

위에 있는 그래프가 바로 이 고민을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양효진(34·현대건설)과 함께 국가대표 붙박이 미들블로커로 활약한 김수지가 선두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이 정호영입니다.

거꾸로 세트당 블로킹 1위였던 한수지는 13위(79.5점)로 순위가 내려갑니다.

세트당 블로킹 10위인 박은진(24·KGC인삼공사)이 여기서는 12위로 오히려 한수지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그래도 톱 5입니다.

처음 보신 그래프는 ‘누적치’고 이 그래프는 ‘세트당 평균’입니다.

김수지가 여전히 1위고 한수지는 이제 17위까지 순위가 내려갔습니다.

정호영은 4위로 순위가 내려왔지만 그래도 톱 5 안에는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양효진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관점에 따라 참 ‘개떡같이’ 보일 수 있는 결과는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걸까요?

IBK기업은행 김수지(왼쪽)와 GS칼텍스 한수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IBK기업은행 김수지(왼쪽)와 GS칼텍스 한수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어떤 선수가 상대 팀 공격에 맞서 팔을 네트 위로 높이 들었을 때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블로킹 성공 = ‘우리 팀’이 점수를 올리는 겁니다.

두 번째는 블로킹에 실패하거나 터치 네트 같은 범실을 저질러 ‘상대 팀’ 점수를 올려주는 겁니다.

세 번째는 블로킹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공격권을 우리 팀이 가져오는 유효 블로킹입니다.

마지막은 공을 상대 코트로 되돌려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격권도 같이 넘겨준 경우입니다. 이런 플레이를 편의상 ‘절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블로킹을 시도하고 있는 KGC인삼공사 정호영.  이 블로킹 시도 결과는?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블로킹을 시도하고 있는 KGC인삼공사 정호영. 이 블로킹 시도 결과는?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유효 블로킹이 나왔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를 이해하시려면 ‘기대 득점’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올 시즌 V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서브를 제외하고, 각 팀 코트에 공이 있던 건 총 3만5007번이었습니다.

이 공격권을 통해 각 팀이 얻은 점수는 총 1만2554점입니다.

따라서 ‘우리 코트’에 공이 있을 때 ‘우리 팀’이 기대할 수 있는 점수는 1만2554점을 3만5007번으로 나눈 0.359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효 블로킹’을 득점으로 연결한 KGC인삼공사. KBSN 중계화면 캡처
‘유효 블로킹’을 득점으로 연결한 KGC인삼공사. KBSN 중계화면 캡처

유효 블로킹은 총 4414번이 나왔고 이 중 1332번(30.2%)이 득점으로 연결됐습니다.

그러면 유효 블로킹은 0.302점을 ‘더하는’ 플레이가 됩니다.

상대 팀이 올릴 수 있었던 0.359점을 막아내고 우리 팀이 0.302점을 올릴 기회를 만들어 낸 거니까요.

결국 유효 블로킹은 0.661점짜리 플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유효 블로킹 상황에서는 ‘약속된 플레이’를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잦아서 기대 득점이 떨어지는 겁니다.

‘절반’을 ‘한판’으로 연결한 KGC인삼공사. KBSN 중계화면 캡처
‘절반’을 ‘한판’으로 연결한 KGC인삼공사. KBSN 중계화면 캡처

절반 상황은 어떨까요?

이런 경우는 2142번 있었는데 상대 팀이 바로 다음에 점수를 올린 건 536점(25.0%)이었습니다.

같은 논리로 생각하면 절반은 상대 팀으로부터 0.250점을 빼앗아 오는 플레이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일단 0.359점은 막아낸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후 상대는 0.359점이 아니라 0.109점이 적은 0.250점만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정리하면 절반은 0.359점에 0.109점을 더한 0.468점짜리 플레이가 됩니다.

KGC 엘리자벳의 블로킹을 도운 팀 동료 정호영. KBSN 중계화면 캡처
KGC 엘리자벳의 블로킹을 도운 팀 동료 정호영. KBSN 중계화면 캡처

아, 그리고 지난번 ‘발리볼 비키니’(https://bit.ly/3Rfca7r)에서 소개해 드린 블로킹 어시스트도 있습니다.

블로킹 어시스트는 기본적으로 블로킹에 성공한 선수와 함께 점프한 선수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블로킹 어시스트가 블로킹 성공의 몇 %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옆에서 같이 뛴 선수가 한쪽 코스를 잡아줬기에 블로킹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블로킹 어시스트는 블로킹 성공과 똑같이 취급하기로 합니다.

어떤 개떡은 보기가 좋습니다. 이 개떡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어떤 개떡은 보기가 좋습니다. 이 개떡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이제 그냥 간단한 사칙연산만 하면 됩니다.

블로킹 성공과 블로킹 어시스트에는 각 1점을 더하고 블로킹 실패 또는 범실을 기록했을 때는 1점씩 뺍니다.

유효 블로킹은 0.661점, 절반은 0.468점으로 계산해 위에서 얻은 결과와 더합니다.

원하신다면 블로킹 어시스트에 적정한 가중치를 주는 방법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접근법이 100% 옳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개떡같지는 않지 않은가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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