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팀 챔프 만들고… 후회 없는 ‘은퇴 사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도로공사 코치로 새 인생 이효희
V리그 원년부터 뛴 전설의 세터…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까지
“좋은 스승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선수 마음 헤아리는 지도자 목표”

KOVO 제공
KOVO 제공
“저는 할 줄 아는 게 배구밖에 없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배구밖에 없었고. 그렇게 묵묵하게 걸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선수생활만 29년. 코트가 지긋지긋해질 때도 됐건만 그는 여전히 배구를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는 배구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주) 선수단이 소집되면 코치로서의 삶이 시작되는데 벌써부터 설레요.”

여자 프로배구의 ‘우승 청부사’ 이효희(40·사진)가 정든 유니폼을 벗는다. 실업리그 시절인 1998년 KT&G(현 KGC인삼공사)에서 데뷔한 그는 V리그 원년인 2005시즌을 시작으로 2008∼2009시즌 흥국생명, 2012∼2013시즌 IBK기업은행, 2017∼2018시즌 한국도로공사까지 소속팀 4곳에서 모두 한 번씩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올 시즌 뒤 4번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던 이효희는 이적이 끝내 불발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도로공사에서는 코치로 제2의 배구인생을 시작한다.

이효희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은퇴 결정을 하기까지 딱 하루만 힘들어했다. 내 나이면 진작 은퇴를 했어도 여러 번을 했을 나이”라며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다. 시즌 종료 뒤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그동안 나이 차 많이 나는 후배들과 지내면서 장난도 많이 쳤는데 수위를 어떻게 낮춰야 할지 고민이다. 애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은퇴가 공식 발표되기 전 한 팬의 사인 요청을 받았다는 이효희는 평소 같이 쓰던 ‘NO.5’나 ‘배구선수’ 없이 이름 석 자만을 적으며 은퇴를 실감했다고 한다.

이효희는 V리그에서 통산 15시즌(2010∼2011시즌 소속팀을 찾지 못해 잠정 은퇴)을 뛰며 역대 가장 많은 1만5401세트를 기록했다. 2013∼2014시즌, 2014∼2015시즌 연달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은퇴 소식을 알리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4차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세리머니 사진을 함께 올린 이효희는 “4개 팀 모두 나에게 각별한 의미다. KT&G가 내게 친정이라면 흥국생명은 화려함으로 기억된다. 김연경 같은 좋은 공격수들을 만났다. 당시 신생팀이었던 IBK기업은행에선 어린 선수들을 다독여가며 우승을 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그동안 자신을 가르쳤던 많은 스승들도 떠올렸다. 이효희는 “스스로 보기에 나는 배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후천적 노력형인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좋은 지도자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돌아가신 황현주 감독님이 많이 생각난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직접 찾아뵐 수 없기에 마음으로 감사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효희는 고 황 감독과 한일전산여고, 흥국생명에서 인연을 맺었다.

도로공사는 다음 시즌 안방 주말 경기에서 이효희의 은퇴식을 열 예정이다. 은퇴식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내내 차분하던 이효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대한 짧게 말할 거예요. 길게 하면 울 것 같으니까.” 우승 청부사는 그렇게 정든 코트와 이별하고 있었다.
::이효희는…::

▽생년월일: 1980년 8월 26일
▽출신교: 수원초-수일여중-한일전산여고-대덕대
▽신장: 173cm
▽프로 통산 기록: 15시즌 409경기 1만5401세트 560득점 193서브
▽우승 기록: 정규리그 5회, 챔피언결정전 4회 (통합 우승 2회)
▽주요 수상: 2007∼2008시즌 세터상, 2008∼2009시즌 세터상, 2013∼2014시즌 정규리그 MVP(사진), 2014∼2015시즌 정규리그 MVP, 세터 부문 베스트7
▽주요 국제대회: 2014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 2016 런던 올림픽 8강, 2018 자
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동메달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여자프로배구#도로공사#이효희#은퇴식#코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