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라건아에게 드리운 ‘천적’ 로드의 그림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6일 0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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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라건아(왼쪽)-전자랜드 로드. 스포츠동아DB
현대모비스 라건아(왼쪽)-전자랜드 로드. 스포츠동아DB
프로농구에서 외국선수 간의 기 싸움은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밀릴 경우, 커리어 내내 맞대결에서 자신감을 잃고 평소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천적 관계가 형성된다.

찰스 로드(34·전자랜드)와 라건아(30·현대모비스)는 프로농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천적 관계’다.

KBL에서의 커리어만 놓고 본다면 라건아가 로드 보다 돋보이는 업적을 쌓았다. 2012~2013시즌 현대모비스에서 KBL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세 번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사실상 리그MVP인 최우수외국인선수상도 3번이나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현대모비스의 정규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하면서 외국선수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로드만 만나면 기가 죽었다. 둘의 첫 만남은 2013년 10월25일이었다. 라건아는 로드 벤슨(은퇴)의 백업, 전자랜드 소속이었던 로드는 리카르도 포웰(은퇴)의 백업이었다. 이 경기에서 로드는 25분만 뛰고도 17점·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반면 라건아는 9분간 4점에 그쳤다.

이 시즌 라건아는 전자랜드 전 평균 득점이 6.8점이었다. 자신의 평균득점(10.4점)에 못 미치는 기록이다. 이후 라건아는 로드만 만나면 기가 죽었다.

둘은 2015~2016시즌 6강 플레이오프(5전3승제)에서 만났다. 로드는 안양KGC, 라건아는 서울 삼성 소속이었다. 당초 삼성이 전력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로드는 라건아를 상대로 3점슛까지 성공시키면서 마음껏 유린했고 KGC가 3승1패로 시리즈를 가져갔다. 로드는 “리카르도(라건아의 미국명)는 내 주머니 안에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천적 관계는 2017년 필리핀에서도 이어졌다. 로드의 산미구엘과 라건아의 핫샷은 필리핀리그 가버너컵 4강 플레이오프(5전3승제)에서 만났다. 이번에도 로드의 승리였다. 라건아는 매경기 30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승부처인 4쿼터만 되면 무리한 공격을 일삼다가 로드에게 블록슛을 당했다. 로드의 활약을 앞세워 3승1패로 핫샷을 제압한 산미구엘은 플레이오프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로드는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이후 로드는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면 라건아는 기량이 절정에 달했다. ‘2018~2019 SKT 5GX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는 라건아가 활동량으로 로드를 압도하면서 천적관계를 청산하는 듯했다.

그러나 로드의 그림자를 아직 완전히 지우지 못한 모양새다. 라건아는 1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뭔가에 홀린 듯 무리한 공격을 일삼았고 14점에 그치며 경기를 망쳤다.

반면 로드는 다시 전성기 시절의 지배력을 선보이면서 31점·15리바운드를 기록, 팀에 승리(89-70)를 안겼다. 라건아의 수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페이드어웨이 슛까지 성공시켰다.

현대모비스와 전자랜드의 챔피언결정전은 1승1패로 원점이 됐지만, 시리즈 분위기는 전자랜드가 가져온 모양새다. 큰 무대에서 라건아에게 매번 승리해왔던 로드는 자신감이 넘친다.

현대모비스는 라건아 의존도가 높은 팀이다. 유재학 감독은 2차전에서 라건아가 경기를 망치고 있음에도 계속 출전을 강행하는 집착을 드러냈지만 실마리를 풀지는 못했다. 라건아가 로드와의 천적관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우승은 쉽지 않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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