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용광로’가 낳은 황금세대… 佛-벨기에 ‘닮은꼴 빅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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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프랑스 군단인가.

최근까지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질문이다. 2년 전 유로 2016 개최 당시 프랑스 축구 스타 카림 벤제마는 자신이 대표팀에서 탈락하자 “디디에 데샹 대표팀 감독이 인종차별 세력에 굴복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개최 당시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 지네딘 지단, 세네갈 출신의 파트리크 비에라 등 다인종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무지개 군단’으로도 불렸던 프랑스는 다양성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테러와 급증하는 이민자들로 인한 실업 문제가 대두되면서 프랑스 내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대표팀에 흑인이 너무 많다는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벤제마가 탈락한 명목상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대표팀 선수의 성관계 영상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이 불거졌는데 벤제마가 이 사건의 범인과 친분이 있고 협박 과정에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벤제마의 인종차별 발언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뜨거운 논란 속에서도 데샹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 대표팀은 역대 어느 팀 못지않게 다인종 선수들로 구성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팀 23명 중 17명이 이민자 가정의 아들이다. 카메룬 출신 아버지를 둔 19세 샛별 킬리안 음바페를 비롯해 아프리카계가 가장 많고 포르투갈 계통의 앙투안 그리에즈만 등 백인 이민자의 아들도 많다.

프랑스와 벨기에가 4강에서 맞붙게 되면서 프랑스 주전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오른쪽)와 벨기에 수석코치 티에리 앙리가 과거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트위터 캡처
프랑스와 벨기에가 4강에서 맞붙게 되면서 프랑스 주전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오른쪽)와 벨기에 수석코치 티에리 앙리가 과거 함께 찍은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트위터 캡처
프랑스와 맞붙는 벨기에 역시 대표적인 다인종 팀이다. 주축 로멜루 루카쿠의 아버지는 아프리카 콩고, 마루안 펠라이니의 아버지는 모로코 출신이다. 인구 1100만 명의 소국이지만 한 나라 안에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쓰는 벨기에는 지역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이러한 벨기에에서 축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사회 통합 도구로 사용됐다. 벨기에는 2000년대 초반 대대적인 축구 개혁을 시작했다. 선수들의 테크닉을 강화하고 전국적인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구축해 국제축구연맹(FIFA) 66위까지 떨어졌던 세계랭킹을 3위로 끌어올렸다. 벨기에 대표팀의 선전이 이어지면서 이들을 응원하는 벨기에 국민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다. 유럽에서 극우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프랑스와 벨기에는 다인종 선수들로 다시 한번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 중이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각각 새로운 황금세대를 앞세우고 있다. 평균 연령 26.1세로 4강 팀 중 가장 젊은 프랑스는 개인기와 조직력이 결합된 팀으로 향후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균 연령 27.7세인 벨기에의 루카쿠(25), 에덴 아자르(27), 케빈 더브라위너(27) 등도 황금세대로 불린다. 1991∼93년생이 주축인 벨기에는 이번 대회 유일하게 5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이들은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로 출전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4위) 때부터 꾸준히 호흡을 맞춰 왔다. 월드컵 최고 성적이 4위(1986년 멕시코 대회)인 벨기에는 프랑스만 넘으면 역대 최고 성적을 확보한다.

한편 프랑스의 옛 축구 스타 티에리 앙리의 특별한 사연도 눈길을 끈다. 1998년 대회 당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간판 공격수 앙리는 현재 벨기에의 수석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스피드를 앞세운 프랑스의 샛별 음바페는 육상 선수 출신으로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던 앙리에 빗대어 ‘뉴(new)앙리’로도 불린다.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에 서 있는 앙리의 표정도 관심을 끌고 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러시아 월드컵#프랑스#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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