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24·강원도청)이 금빛 질주를 펼친 16일. 설날 이른 아침 모두의 시선은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를 향했다. 하지만 어머니 조영희 씨(45)만은 경기장에서 눈을 돌렸다. 가슴으로 아들의 경기를 본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가 봤다.
이미 하루 전 1, 2차 레이스를 마치고 이날 3차 레이스 첫 주자로 나선 윤성빈이 몸을 풀기 시작한 오전 9시 20분. 출발선에서 아들의 등장을 기다리던 조 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경기를 보지 못하고 길가로 나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무 긴장돼서 못 보겠어요.”
슬라이딩센터는 16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출발부터 골인 지점까지 트랙 뒤편에 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조 씨는 경기를 보지 않고 골인 지점을 향해 30여 분을 말없이 걸었다.
조 씨가 5번 구간을 지날 때였다. 멀리서 썰매가 얼음판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고개를 돌렸지만 눈으로 잡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건 채 1초도 되질 않았다. 우두커니 선 채 하염없이 아들의 뒷모습을 좇았다. 장내에 윤성빈이 3차 레이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2012년 말 미국 파크시티 경기장에서 생애 첫 주행을 마친 윤성빈은 조 씨에게 전화했다. 겁먹은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짧은 한마디에도 조 씨는 아들의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이제 아들은 얼음판을 당당히 질주한다. 그런데 정작 조 씨는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걸 힘들어했다.
오전 11시 15분부터 마지막 4차 레이스가 시작됐다. 걸어서 골인 지점에 도착한 조 씨는 11시 10분경 자리에 앉았다.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주변은 “윤성빈”을 외치는 관중들의 응원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가 지나고 11시 52분경 드디어 윤성빈의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좌석 맞은편 대형 스크린에 4차 레이스를 준비하는 윤성빈의 모습이 잡혔다. 조 씨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윤성빈!” 주먹 쥔 손을 뻗으며 힘껏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또 눈물이 터져버렸다. 곧이어 곁에 있던 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아들의 출발 모습도, 경기 모습도 쳐다보지 못했다. 몇 분 뒤 옆에 있던 딸이 조 씨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스크린을 보게 했다. “봐봐. 오빠가 1위잖아.” 조 씨의 얼굴엔 울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조 씨는 길게 울먹였다.
“지금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데….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어요.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끓여주고 싶네요.” 조 씨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한편 가슴 졸였던 순간을 끝내고 승리의 감격을 맛본 어머니는 한결 편안하게 지난날을 떠올렸다. 큰일을 해낸 아들과 함께 17일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P&G 생큐맘 인터뷰’에 나선 조 씨는 “성빈이의 태몽으로 큰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가는 꿈을 꿨다. 친할아버지는 돼지꿈을 꾸셨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조 씨는 “지난해 어버이날 사진촬영을 했는데 당시 성빈이가 ‘어무이, 이제부터 효도할게요’라는 애정 어린 편지를 남겼다”며 “정이 많은 아이”라고 자랑했다.
어머니에 따르면 윤성빈은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특별하게 투정을 부리지 않은 아이였다. 조 씨는 “운동을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성취감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조 씨는 또 “고등학생이던 성빈이가 스켈레톤을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지 않았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아이가 도전하겠다고 하기에 100% 믿음을 갖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어머니가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고 기다려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쑥스러워서 말을 못했지만 사랑하고 감사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머니 앞에서 새로운 각오도 빼놓지 않았다. 윤성빈은 “잘하는 선수로 길게 가고 싶다. 지금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 한번 환한 미소가 번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