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K리그 우승팀 단장의 소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1월 24일 05시 30분


전북 백승권 단장. 사진제공|전북현대
전북 백승권 단장. 사진제공|전북현대
올 시즌 K리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전북천하’다. 전북 현대는 스플릿라운드 2경기를 남겨두고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하며 2017년을 평정했다. 선수단은 절대강자의 대접을 제대로 받았다. K리그 시상식에서 MVP, 감독상, 영플레이어상 등 주요상을 휩쓴데 이어 베스트 11에서도 5명이나 선정됐다. 이들이 양지에서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누군가 음지에서 희생을 했기에 가능했다. 구단 프런트다. 선수단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래서 ‘프런트도 우승 주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북 백승권(56) 단장은 손사래를 쳤다. 모든 공을 선수단에 돌렸다. “우린 조력자 일뿐이다. 단장은 선수들 얘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우승이란 선수단과 팬, 그리고 구단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멀고도 험난한 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백 단장은 10년 넘게 축구단에서 일했지만 정규리그 우승을 맛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뒤 2000년 축구단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사무국장과 부단장을 거치며 구단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9년 가을 현대차 홍보실로 발령 나면서 잠시 이별했는데, 그 해 전북은 처음으로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우승과의 인연은 그렇게 비껴갔다.

사진제공|전북현대
사진제공|전북현대

하지만 올 2월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누리지 못한 기쁨을 8년여 만에 되찾았다. “복귀해보니 사무국장 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구단의 위상변화도 생겼고, 인프라도 잘 갖춰졌다. 유소년클럽의 시스템화도 잘 이뤄졌다. 모두 전임 단장님이 해 놓은 거다. 그래도 우승을 하니 감회는 남달랐다. 제주전(10월29일)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큰 보람을 느꼈다. 단장으로 오면서 올해 우승하고, 내년 ACL(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단 우승은 했다.”

백 단장은 본능적이라고 할 정도로 선수단을 치켜세웠다. 특히 최강희 감독을 향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2005년 처음 감독님과 인연을 맺었는데, 이젠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다. 감독님을 처음 봤을 때 ‘이런 감독도 있구나’하고 느꼈다. 왜냐면 당시에는 환경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감독님 자신이 뭔가를 요구할 법도 한데, 구단의 애로사항을 얘기하면 이해하고, 감싸주고, 같이 갈려고 했다. 그 때부터 신뢰가 쌓였다. 감독님은 포용력, 판단력, 결단력 등을 모두 갖춘 훌륭한 지도자다.”

전북 이동국-백승권 단장(오른쪽).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이동국-백승권 단장(오른쪽).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백 단장은 1년 재계약한 이동국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다. “본인과 구단, 감독 모두 재계약을 원했다. 9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은 결코 쉽지 않는데, 나이가 들었지만 자기관리를 잘하기에 가능했다. 내년에도 구단에 꼭 필요한 선수다. 팬들도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대한다.”

이제 전북이 리딩 클럽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우승도 5번이나 했고,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도 보유했으며, 팬 층은 지방구단의 한계를 딛고 몰라보게 두꺼워졌다. 최근 몇 년간 K리그의 대표구단은 전북이었다. 이런 평가를 백 단장은 조심스러워했다. “아직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또 K리그 전체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모든 구단들이 같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야한다. 우선은 K리그의 파이를 키워야만 같이 살 수 있다.”

올 시즌 전북을 평가하면서 빼놓지 않은 게‘투자의 결실’이다. 전북은 투자한 만큼 성적을 냈다. 허리띠를 졸라맨 구단이 많다보니 확실하게 대비된 것도 사실이다. 백 단장은 투자에 대한 소신이 뚜렷했다.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둬들인다. 그런데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결실 자체가 없다.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다해야 수확을 할 수 있는데,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뿌린 만큼 거둬들인다. 그런데 주의해야할 건 무조건 뿌린다고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뿌려야할 곳에 제대로 뿌려야한다. 제대로 된 투자가 중요한 것이다.”

사진제공|전북현대
사진제공|전북현대

전북은 내년 시즌 더블(정규리그+ACL)이 목표다. 그래서 더 많은 투자를 계획 중이다. “영입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6명 정도를 보강해 선수단 규모를 38명으로 맞출 생각이다. 그래야 3개 대회(정규리그, ACL, FA컵)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특히 ACL에 관심이 많다. 중국이나 일본구단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투자를 해야 한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그걸 해내야 진정한 기술자가 아닌가.”

백 단장은 진정한 명문구단을 꿈꾼다. 특히 팬에 관심이 높다. 팬을 먼저 생각하는 구단이 되겠다는 걸 다짐하듯 강조했다. “팬이 경기장을 찾아야만 입장수입, (상품 등)판매수입, 시청률, 광고수입 등 모든 게 좋아진다. 팬을 어떻게 하면 경기장으로 오게 할지를 항상 고민한다. 팬을 먼저 생각하는 구단이 되겠다.”

백 단장은 마지막으로 “현실에 안주하면 반드시 도태한다. 올해 우승의 기쁨은 다 잊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전북의 앞날은 밝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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