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191cm 장신 세터 황동일
신인왕 땄지만 백업 밀려 팀 전전… 자존심 꺾인 명가의 운명 짊어져
삼성화재 세터 황동일이 토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러 포지션을 거친 그는 이번 시즌 삼성화재 주전 세터로 발돋움하려 한다. 용인=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배구 인생의 갈림길에 선 기분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배구 데뷔 10년차 황동일(31·삼성화재)에게 주전 세터로 뛸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찬스 볼이 떴다. 그는 이번 시즌 팀의 붙박이 세터 유광우(우리카드)의 이적으로 주전 세터를 맡았다. 16일 경기 용인시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그는 서른이 넘어 찾아온 천금 같은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다시 못 올 기회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합니다.”
황동일은 대학 시절 촉망받던 세터였다. 고교 시절까지 공격수(라이트)로 뛰다가 대학 진학 이후 세터로 전향했다. 당시 문성민(현대캐피탈)과 함께 경기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LIG에서 프로 데뷔 시즌을 보낸 2008∼2009 V리그에선 신인왕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그는 키 191cm의 장신 세터로 여차하면 스파이크까지 내리꽂는 ‘공격형 세터’로 주목받았다.
얄궂게도 찬란하게 빛나던 그 순간이 백업을 전전하는 긴 방황기의 시작이었다. LIG에서 백업으로 밀려났고, 이후 대한항공(2011년 이적)을 거쳐 삼성화재(2014년)에 정착해서도 주전으로 온전히 한 시즌을 책임진 적이 없었다. 그 기간에 라이트와 센터 등 공백이 생기면 주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황동일은 “결국 제가 좋은 기량을 못 보여줬던 탓”이라며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안 좋은 평가가 나오는 걸 보고 멘붕(멘털 붕괴)이 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런 과거를 놓고 보면 그가 ‘올해를 인생 역전의 무대로 삼고 싶다’고 욕심을 내볼 만도 하다. 하지만 황동일은 “(여전히) 최고 세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면서도 팀을 앞세운다. 그는 “결국 선수가 인정받으려면 소속 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하더라”며 “최고의 세터는 결국 팀이 이길 수 있게 토스를 올리는 선수”라고 말했다.
그의 이번 시즌 활약 여부는 황동일의 개인 배구사(史)를 뛰어넘어 명가 재건을 노리는 삼성화재의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퍼즐이기도 하다. 지난해 V리그 출범 이후 사상 처음으로 ‘봄 배구’ 진출에 실패한 삼성화재는 올해 슈퍼스타 신진식 감독을 새 사령탑에 앉혔다.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던 센터 자리에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국가대표 센터 박상하를 영입해 보강했다. 선수들에게 우승 DNA를 심어줄 수 있는 새 감독과 팀 구성이 이루어졌다. 이제 선수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야전 사령관(세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황동일은 “제 손에서 승패가 결정 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며 “큰 키를 바탕으로 높은 타점에서 올려주는 토스를 활용해 확실하게 득점할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자주 떠올리는 시절이 있다. 대한항공에서 뛰던 V리그 2013∼2014시즌이다. 황동일은 당시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운 한선수를 대신해 주전 세터로 나섰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해 팀 이적이란 쓴맛을 봐야 했다.
“지금과 정말 비슷하네요. 당시에는 그 기회가 당연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때 마음가짐이 느슨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하루 2000개 이상 토스 연습을 하며 준비했습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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