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폭소, 트레이드, 눈물바다…오태곤의 길었던 하루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9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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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곤(26·개명 전 오승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오태곤(26·개명 전 오승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눈물바다가 됐어요.”

롯데 강민호(32)는 18일 밤늦게 사직구장을 나가면서 안타까워했다. 바로 아끼던 후배 오태곤(26·개명 전 오승택)이 사직 NC전이 끝난 직후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들은 뒤 라커룸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걸 봤기 때문이다.

경기 후 기자들은 대부분 기사 마감을 하고 늦게 퇴근한다. 특히 이날 경기가 끝나자마자 롯데가 내야수 오태곤과 투수 배제성(21)을 주고 kt 투수 장시환(30)과 김건국(29)을 받는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기사 마감은 더욱 늦어졌다. 그런데 이때 강민호도 힘없는 얼굴로 늦게 사직구장을 나갔다. “왜 이렇게 늦게 가느냐”는 말에 강민호는 “라커룸이 울음바다가 됐는데, 나올 수가 없더라”며 씁쓸해 했다.

“승택이가 많이 울더라고요. 트레이드돼서 오히려 기회가 많을 거라고, 잘 될 거라고, 그래서 좋을 거라고 말하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대요. 그렇지만 부산에 정이 많이 들어 고향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떠나냐면서 울더라고요.”

강민호는 아직도 오태곤의 개명 전 이름 ‘승택’이 입에 붙는지 그렇게 불렀다. 오태곤은 쌍문초-신월중-청원고를 나온 서울 토박이지만 2010년 롯데에 3라운드 지명을 받고 부산에 내려와 살아왔다. 이제 부산생활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고, 롯데 사람들에게 정이 들 만큼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이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나 오태곤으로선 이날의 트레이드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KBO에 정식으로 개명한 이름을 등록한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4월6일에 개명 허락이 떨어졌지만, 그동안 원정경기가 이어지는 등 일정이 맞지 않아 KBO에 개명등록 신청이 늦어져 이날 공시가 이뤄졌던 것이었다.

오태곤(26·개명 전 오승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오태곤(26·개명 전 오승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그는 유니폼에 처음 ‘오태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새 출발을 다짐했다. ‘개명한 이름은 널리 알려야한다더라’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경기 전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에 응했다. ‘바꾼 이름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클 태(太), 땅 곤(坤)을 쓰게 됐다. 작명소에서 이름 뜻을 알려줬는데, 내용이 많고 너무 길어 나도 한 번 더 봐야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부상이 너무 잦아서 바꾸게 됐다. 그동안 야구를 못해서 2군에 내려가는 것보다 여기저기 다쳐서 내려간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면서 “아직 오태곤이라는 이름이 나도 어색하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오태곤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불려지게 된 이날, 경기 전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손아섭(개명전 손광민)이 개명한 곳에서 오태곤도 개명하게 됐다는 뒷얘기가 돌면서 느닷없이 ‘손아섭이 소개비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에 손아섭은 “정반대다. 솔직히 태곤이가 개명한 곳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거기는 내가 기를 다 흡수했다’며 뜯어말렸다. 많은 선수들이 그곳에 가서 개명을 하면서 내 기도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태곤이한테 알려주지 않았는데 자기가 수소문해서 갔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젠 제발 부상 없이 야구하자’며 개명 후 새 출발을 다짐한 첫날 경기 직후 날아든 트레이드 소식에 오태곤은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모두들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라고 한다. 그 비즈니스 관계를 가장 절감할 수 있는 게 바로 트레이드다.

구단은 구단대로, 선수는 선수대로, 각자 살기 위해 결별을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매정한 거래. 그러나 보내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대로,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그래도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롯데 관계자들과 선수들은 울면서 kt로 떠난 오태곤을 진심으로 격려했다. 그라운드를 자신의 ‘큰(太) 땅(坤)’으로 만들기를 바라면서.

사직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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