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팅 머신’으로 돌아온 여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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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HSBC 위민스 역전우승… 8번홀부터 신들린 5연속 버디
작년 손가락부상 후유증 벗고 LPGA 복귀 2경기 만에 트로피

한때 ‘갖다 대기만 하면 들어간다’는 찬사를 들었던 신들린 퍼팅 감각이 그를 다시 승리로 이끌었다. 화려한 부활이었다. 부상으로 골프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박인비(29·KB금융그룹)였다. “그저 필드에 서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던 그가 환한 미소 속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박인비는 5일 싱가포르 센토사CC 탄종 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3타 차 공동 5위로 출발한 박인비는 버디 9개와 보기 1개로 코스레코드인 8언더파를 몰아쳐 최종 합계 19언더파로 2위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을 1타 차로 제쳤다.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이후 왼쪽 손가락 치료에 매달렸던 그는 지난주 혼다 타일랜드(공동 25위)에서 6개월 만에 복귀한 뒤 두 번째 도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2015년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이후 1년 4개월 만에 통산 18승째.

출전 공백으로 세계 랭킹이 12위까지 떨어진 박인비는 대회에 앞서 “롱 게임은 예전 수준으로 올라왔는데 쇼트 게임과 퍼팅 감각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날 퍼팅 수가 33개까지 치솟으며 속을 태운 박인비는 이날 퍼터를 27번밖에 잡지 않은 것을 역전 우승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대회 나흘 동안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난 경우는 한 번밖에 없었으며 마지막 날 그린 적중률은 94%였다.

박인비는 8∼12번홀 5연속 버디로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갔다. 9번홀 8m, 10번홀 4m, 11번홀 5m 등 퍼터를 떠난 공은 마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는 듯 홀 안으로 사라졌다. ‘퍼팅머신’으로 이름을 날리던 2013년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17번홀에서 다시 10m 가까운 퍼팅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예약한 그는 18번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쭈타누깐은 “인비가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다”며 감탄했다.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훈련을 재개한 박인비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주니어 시절 때처럼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테니스, 배드민턴도 병행했다. 스윙 코치인 남편 남기협 씨와 올림픽 우승의 숨은 공로자인 김응진 코치도 도왔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맞춤형 스윙으로 왼쪽으로 밀리는 샷의 문제를 바로잡았다.

2015년 72홀 노보기 플레이로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부모님, 여동생, 85세의 할아버지가 현장을 지킨 가운데 정상에 올라 기쁨이 더욱 컸다. 인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처음 골프채를 쥐여준 할아버지는 손녀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고령에도 장거리 응원에 나섰다.

시즌 초반 “집에 있는 우승 트로피에 얽힌 추억은 모두 지웠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던 박인비는 “오늘은 퍼팅이 다 들어갈 것 같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향한 자신감을 얻었다”며 웃었다. 이미 전설로 불리는 박인비 골프 인생의 제2막이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한국 선수는 이 대회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또 LPGA투어에서 장하나 양희영에 이어 3주 연속 한국 선수가 승전보를 전했다. LPGA투어 정회원 데뷔전을 치른 박성현은 3위로 마치며 합격점을 받았다. 재미교포 미셸 위는 단독 선두로 출발하며 모처럼 우승 기대감을 부풀렸으나 5번홀(파5)에서 치명적인 더블보기를 한 뒤 무너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박인비#hsbc 위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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