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말 광주시내 한 술집에서는 밤새도록 치열한 언쟁이 벌어졌다. 언쟁을 벌인 두 주인공은 해태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에이스로 활약했던 선동열(54·전 KIA 감독)과 이상국 해태 단장(65·전 KBO 사무총장)이었다. 두 사람의 연봉 협상 과정은 한국 야구계가 주목한 '빅 매치'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사상 첫 억대 연봉 선수(재일동포 제외)가 나오느냐 여부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선동열로서는 '유니폼 반납'을 불사할 만했다. 1990시즌 8750만 원의 연봉을 받았던 선동열은 그해 22승 6패 4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13이라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지금 같으면 두 세배 연봉이 뛸 만 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해태는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짜기로 악명 높았다. 두 사람은 해를 넘겨서도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지며 연봉 협상을 이어갔다. 그러다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기 며칠 전 마침내 연봉 1억 500만 원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전 종목을 통틀어 한국 선수 최초의 억대 연봉이었다.
●"지금 같으면 술 안 마셨겠죠."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난 선동열 한국야구대표팀 코치는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 땐 매년 그런 식으로 연봉 협상을 했다. 돈은 많이 못 받았지만 그래도 오가는 술잔 속에 정이 넘쳤었다"며 허허 웃었다.
만약 선 코치가 시대를 잘 타고 났다면 100억 원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은 그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오프 시즌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외야수 최형우(KIA)는 KBO리그 최초로 100억 원(4년 기준)에 계약했다. 삼성 감독 시절 제자였던 투수 차우찬은 4년 95억 원에 LG로 팀을 옮겼다. 지난 시즌까지 해외 무대에서 뛰다 친정 롯데로 돌아온 이대호는 올해부터 4년간 150억 원을 받는다.
선 코치는 "당시엔 열심히 해 좋은 성적을 올려도 연봉 인상폭이 적으니 선수들이 시즌, 비 시즌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나 역시 그랬다. 만약 그 때 지금 같은 FA제도가 있었으면 술 안 마시고 열심히 운동만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국가대표' 유희관은 나도 궁금
선 코치는 3월 열리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 투수진을 이끈다. 2015년 말 프리미어12 우승을 합작했던 김인식 감독을 도와 다시 한 번 한국 야구의 실력을 세계에 떨치겠다는 각오다.
이번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유독 화제의 중심에 섰던 선수가 있다. 느린공의 사나이 유희관(두산)이다. 지난해 유희관의 직구 최고 구속은 134km, 평균 구속은 128km이었다. 하지만 유희관은 절묘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15승을 올리는 등 최근 4년 연속 10승을 올렸다. 본인은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번 WBC 대표 명단에서 제외됐다.
선 코치는 "솔직히 나도 희관이가 국제무대에서 통할지 궁금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하지만 WBC는 시험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무대다. 코칭스태프의 결론은 '도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희관이 삼진을 잡는 패턴은 몸쪽 깊은 공을 던진 후 바깥쪽 유인구를 던지는 것이다. 희관이가 국제대회에서 통하려면 한국에서처럼 몸쪽 깊숙한 공을 심판이 스트라이크로 잡아줘야 한다. 하지만 WBC에선 그렇다는 보장이 없다. 그 공이 볼이 되면 던질 공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언제는 최강팀이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WBC 대표팀을 약체라고 평가한다. 김인식 감독이 원했던 추신수(텍사스), 김현수(볼티모어), 강정호(피츠버그) 등 메이저리거들이 부상 우려와 사건사고 등으로 대거 최종 엔트리에서 빠졌다. 빅리거는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1명밖에 없다.
선 코치는 "한국은 그 동안 여러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최상의 전력을 갖고 임한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9년 제2회 WBC 때도 메이저리거는 추신수 한 명 밖에 없었다.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때도 최약체라는 평가 속에 쿠바, 일본 등을 넘고 우승했다. 선 코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대표로서의 마음가짐이다. 선수들이 태극마크의 무게를 제대로 느낀 대회에서는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 투구 수 제한이 있는 WBC에서는 김인식 감독님의 투수 용병술이 크게 빛을 발할 것"이라고 했다. 선 전 감독은 송진우, 김동수 코치와 함께 김 감독을 보좌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