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간 15시간씩 ‘선수촌 유세’… 발로 뛰며 따낸 ‘IOC 금메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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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 2016 리우 올림픽]유승민, IOC 선수위원 당선

이신바예바와 함께… 새로 선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들이 앤절라 루지에로 IOC 
선수위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헝가리 주르터 다니엘(수영), 러시아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미국 
루지에로(아이스하키), 한국 유승민(탁구),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펜싱). 사진 출처 IOC 공식 홈페이지
이신바예바와 함께… 새로 선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들이 앤절라 루지에로 IOC 선수위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헝가리 주르터 다니엘(수영), 러시아 옐레나 이신바예바(장대높이뛰기), 미국 루지에로(아이스하키), 한국 유승민(탁구),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펜싱). 사진 출처 IOC 공식 홈페이지
“100명이 지나간다고 하면 절반은 인사도 안 받아요. 50명 중 45명은 그냥 ‘Hi(안녕)’ 하고 지나가죠. 나머지 5명만 ‘내가 왜 널 찍어야 하느냐’ 하고 관심을 보여요. 그럼 그 5명에게 진심을 담아 저를 소개하는 거죠.”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일찌감치 버렸다. 누구든 그의 이야기를 들어만 준다면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매달렸다. 그런 노력과 진정성이 있었기에 선수들의 지지를 얻어 IOC 선수위원으로 뽑힐 수 있었다.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난 유 위원은 그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유 위원이 한국을 대표해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됐을 때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출마한 세계 각국의 후보(23명) 중에는 쟁쟁한 이름이 많았다.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전설적인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유럽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인 탁구 선수 출신 장미셸 세브(벨기에),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루이스 스콜라(아르헨티나)…. 인기와 지명도에서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 네 차례 올림픽에 출전해 금 은 동메달을 한 개씩 딴 유 위원은 한국에서는 스타일지 몰라도 올림픽 선수촌에서는 동양에서 온 평범한 전직 올림피안에 불과했다.

“처음엔 저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 보니 선수들이 IOC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 발로 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선거가 끝난 17일까지 그는 쉬지 않고 선수촌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만났다. 매일 오전 7시에 나가 오후 10시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끼니도 수시로 거르고 생면부지의 어린 선수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매일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만났어요. 솔직히 투표 전날까지도 제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는 선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진심은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투표 마감 전날 한 아프리카 선수가 오더니 ‘하루도 쉬지 않고 밝게 웃어준 모습에 감동받아 네게 표를 던졌다’라고 하더라고요.”

유 위원의 진심과 작전이 통했다. 선수 1명은 선수위원 투표에 모두 4장의 표를 던질 수 있다. 대개는 같은 나라 선수, 같은 종목 선수, 그리고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에게 투표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발로 뛰며 얼굴을 익힌 선수에게 던지기 마련이다.

투표 결과 5185명의 유권자 중 유 의원은 1544표를 받아 23명 중 2위를 차지했다. 이변이었다. 1위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34·독일)의 1603표와는 100표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저를 지지했건, 그렇지 않았건 25일 동안 제 인사를 받아준 모든 선수에게 감사할 뿐이에요. 선수 유승민이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따뜻한 눈빛으로 많은 선수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8년의 임기가 끝날 때 모든 선수로부터 박수 받을 수 있게 정말 열심히 뛰려고요.”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뀌었다. 전날까지 그는 선수촌 식당 이용에도 규제를 받았다. IOC 선수위원 당선 후 그는 새로운 출입 카드를 받았다. 새 카드로는 선수촌과 경기장은 물론이고 메인프레스센터 등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장소를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유 위원은 “기쁜 것도 사실이지만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당장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나. IOC와 우리나라의 가교 역할을 잘하면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나설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유 위원이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됨에 따라 IOC 선수위원을 꿈꿨던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선수위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혔다. IOC 선수위원은 국가당 한 명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 사격 남자 권총 50m 금메달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37·kt)는 유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낼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유승민#ioc위원#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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