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각본 있는 야구? 치유불능 ‘불신의 시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7월 27일 09시 30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흔히 스포츠를 두고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틀에 박힌 ‘클리셰’ 같은 표현이지만, 인간의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내는 스포츠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모두가 ‘각본 있는 야구’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각본에 따라 승부조작을 시도한 선수가 나왔고, 이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며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과거 ‘1회 볼넷’ 수준의 승부조작이 아니라 이젠 승부를 좌지우지할만한 실점까지 조작을 시도하고 있다. NC 이태양은 조작 시도가 밝혀진 경기에서 어색하지 않게 실점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팬들은 이 경기를 돌려 보면서 이태양의 손짓과 몸짓, 표정 하나에 공분하고 있다. 한 감독은 “알고 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겠더라. 반대로 알고 보면 현장의 감독들은 어떤 기분이겠나”라며 고개를 숙였다.

야구팬들도 충격에 빠졌다. 비시즌이던 2월에 사건이 터진 2012년, 즉 첫 번째 승부조작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한창 시즌 중인, 그것도 순위싸움에 한창인 7월에 사건이 터졌다.
이태양의 승부조작 사실이 들춰진 7월20일, 이날 이후로 야구팬들의 시선은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선발투수가 1회 볼넷을 내주기라도 하면, 실시간 인터넷 중계 댓글창엔 ‘조작’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댓글 하나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명 한명이 모여 집단의 힘을 발휘하는 게 인터넷 세상이다. 군중심리가 쉽게 형성되기도 한다. 실제로 연속 볼넷이나 연속 안타가 나오면, 해당 투수를 비난하는 강도가 거세진다. ‘조작범’이란 꼬리표까지 붙는다. 과거에 실력을 탓했다면, 이젠 ‘범죄 용의자’ 취급을 해버린다.

현장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그런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사건 이후 당일 엔트리가 발표되면, 갑작스레 1군에서 말소된 선수를 두고 수군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아픈 게 아니라, ‘다른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의심부터 하고 본다.

승부조작과 관련된 수많은 소문 속에 “쟤도 조작했대”라는 말을 듣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심을 받는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구단도 숨죽이며 선수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아니다”라고 하는 선수들을 일단은 믿을 수밖에 없기에 더욱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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