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장착한 ‘붉은 땅벌’…여자하키, 리우서 비상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2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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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자 하키대표팀은 ‘붉은 땅벌’로 불렸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저돌적으로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8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여자 하키는 올림픽 메달 유망 종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부터 침체기가 왔다. 강팀들과의 기량 차이가 벌어지면서 더 이상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정신력을 강조했던 한국팀만의 전술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다르다. 20년 만에 메달 획득을 노리는 여자 하키대표팀은 전자 장비를 이용한 정교한 전술 훈련으로 다시 비상하는 꿈을 꾸고 있다.

○ GPS 장착한 붉은 땅벌들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을 시작하기 전 웃옷 목덜미 부분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단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과학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인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은 2014 인천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GPS 장비를 구입해 하키 대표팀이 사용하도록 했다. 이 장비를 이용해 감독은 선수들의 이동거리와 움직임, 순간 스피드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한진수 대표팀 감독(51)은 “노트북으로 전송된 정보를 토대로 선수들의 몸 상태 변화를 관찰한 뒤 교체 타이밍을 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키는 경기장에 전자 장비를 반입하는 것이 허용되는 종목이다. 따라서 GPS 장비는 실전에서도 사용된다. GPS 장비뿐만 아니라 골대 뒤편에 설치된 카메라 타워는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영상을 전송해 준다. 박종철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 연구원은 “전자 장비로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령탑들은 벤치에서 엄청난 정보전을 벌인다”고 말했다.

GPS 장비 도입 초기만 해도 선수들은 부담을 느꼈다. 주장 한혜령(30)은 “경기 기록 등 성적이 실시간으로 나와 요령을 피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한 감독은 “선수들 스스로 자신이 뛴 거리 등이 외국 선수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체력 훈련을 스스로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유럽 팀들은 예전부터 GPS 장비를 활용했기 때문에 과거 한국 대표팀은 첨단 장비로 무장한 팀을 상대로 감독의 감에 의존해 경기를 운영해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올림픽에서는 장비 가격만 9000만 원에 달하는 GPS 등의 지원을 바탕으로 한국도 당당하게 하키 강국들과 맞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스승과 제자의 ‘어게인 2005’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세계 8위)은 네덜란드(1위), 뉴질랜드(4위), 중국(6위), 독일(9위), 스페인(14위)과 예선 A조에 속해 있다. 12개 국가가 2개 조로 나뉘어 치러지는 조별리그에서 각조 상위 4팀이 8강에 진출한다. 한 감독은 “동메달 이상을 달성하려면 조별리그의 성적이 중요하다. 크로스 방식으로 8강이 진행되기 때문에 A조 상위권에 들어야 B조 하위 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 획득 이후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다. 집중적 투자로 선수들의 기량이 더 향상된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자 하키 대표팀은 사실상 2명의 감독이 이끌고 있다. 경기장에서는 한 감독이 선수들을 지휘하지만 경기장 밖의 감독 역할은 카리스마가 강한 주장 한혜령이 맡고 있다. 한 감독은 “내가 남자이다 보니 훈련이 끝난 뒤 숙소에서 선수들의 생활 관리는 주장인 한혜령이 하고 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림픽에서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2005년 세계주니어월드컵에서 한 감독과 금메달을 합작한 한혜령은 “첫 만남 당시 ‘핸섬 사령탑’이던 감독님이 ‘꽃중년’이 되셨다. 나도 어느덧 대표팀 고참으로 올림픽에 나서게 된 만큼 선수단의 소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최지선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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