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야유와 무관심 타격연습…익숙지 않은 후보선수 김현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4월 6일 05시 45분


볼티모어 김현수(오른쪽에서 2번째)가 5일(한국시간) 오리올파크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훈련 직후 사인을 요청하는 현지 팬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볼티모어(메릴랜드 주)|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볼티모어 김현수(오른쪽에서 2번째)가 5일(한국시간) 오리올파크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훈련 직후 사인을 요청하는 현지 팬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볼티모어(메릴랜드 주)|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설레고 떨리고 하긴 하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했던 개막전하곤 느낌이 다르네요.”

볼티모어 김현수(28)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돼 개막전에 참가한 날, 말을 아꼈다. 두산 시절 거침없고 재기 넘치는 화법을 구사하는 그의 스타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의기소침이었다. 그 조심스러움이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아프게 다가온 것은 5일(한국시간) 캠든야즈에서 김현수를 지켜본 기자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김현수는 “(후보 선수로 개막을 맞은 현실에 대해) 벤치에서 배워야지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조용히 말했다. 마이너 거부권을 행사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어땠는지를, 미래를 얼마나 힘겹게 견디고 있을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국의 타격기계가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고 걷는 현실은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생소했다. 마이너로 보내려던 김현수를 마지못해 남겨둔 볼티모어는 김현수를 완전히 후보 선수 취급했다. 주전급 타자들이 타격연습을 할 때 김현수는 좌익수 포지션에서 날아오는 타구를 잡는 훈련을 했다. 곁에서 잠깐 수비코치가 캠든야즈에 관해 몇 마디 조언을 해줬다. 캐치볼을 할 때 팀 동료는 ‘한국에서 온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라’며 김현수를 돌려세웠지만 어색하게 웃기만 할뿐이었다. 김현수 곁에는 통역 대니 리가 의지할 유일한 대상인 것처럼 보였다.

타격훈련 중간, 잠깐의 휴식시간에 본부석 맨 앞자리에 자리 잡은 볼티모어 팬들이 김현수에게 사인요청을 해왔다. 김현수는 성실히 응해줬다. 그러나 정작 개막전 세리머니인 볼티모어 선수 소개 때 김현수의 이름이 호명되자 캠든야즈에는 야유가 울려 퍼졌다. 기립 박수를 받은 벅 쇼월터 감독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김현수의 경쟁자 조이 리카드는 이날 4타수 2안타로 관중들의 기립박수까지 받아 분위기가 더 힘들어졌다. 한국 팬들은 ‘김현수가 볼티모어의 부당한 외압에 맞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다’고 지지하지만 정작 볼티모어 홈 팬들은 ‘김현수가 개막 25인 로스터에 들어간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김현수가 마음 편히 이름에 걸맞은 야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지 막막한 예감이 들었던 볼티모어 개막전의 풍경이었다.

볼티모어(미국 메릴랜드 주)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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