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체육회 27일 공식 출범]예산 자립으로 정부-정치권서 독립… 일본을 배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下> 통합체육회 성공을 위한 과제들

《 한국 경제가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어느 정도 ‘일본 따라 하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쉽지 않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이 단기간에 스포츠 강국이 된 것도, 현재 체육회가 ‘엘리트 체육’을 담당하는 대한체육회와 ‘사회(생활) 체육’을 담당하는 국민생활체육회로 나뉘어 있는 것이 그렇다. 따라서 통합 체육회가 나아갈 길도 일본에서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

①일본은 지역 체육협회를 공익재단법인으로 만들어 국민들이 각종 체육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다. 그 덕분에 성별과 연령,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생활체육이 활성화돼 있다. ②한일 생활체육 동호인 교류전에 참가한 선수들이 배구 경기를 하는 장면. 그렇다고 일본이 엘리트 체육에 소홀한 건 아니다. ③일본체육회는 한국의 체육과학연구원과 태릉선수촌을 모델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와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내고 있다. 동아일보DB
①일본은 지역 체육협회를 공익재단법인으로 만들어 국민들이 각종 체육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다. 그 덕분에 성별과 연령,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생활체육이 활성화돼 있다. ②한일 생활체육 동호인 교류전에 참가한 선수들이 배구 경기를 하는 장면. 그렇다고 일본이 엘리트 체육에 소홀한 건 아니다. ③일본체육회는 한국의 체육과학연구원과 태릉선수촌을 모델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와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내고 있다. 동아일보DB
○ 따라 하다 죽었다

일본은 자국에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 3위에 오른 뒤 중고교 스포츠클럽 활성화 등 생활 체육 쪽으로 체육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체육진흥회를 발족시켜 친동생인 전경환 씨에게 회장 자리를 맡겼다. 군사 정권 역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이 4위를 차지하자 일본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했다. 그 뒤 ‘제6 공화국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이 체육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고 있던 1991년 1월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창립됐다. 현재 국민생활체육회의 뿌리다. 그 전까지는 대학체육회 안에 있던 생활체육위원회에서 생활 체육 업무를 담당했다.

대한체육회 관점에서 보면 이번 통합은 분가했던 동생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안방을 내달라”고 하는 격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이 “가진 자산으로 보나 역사성으로 보나 어떻게 일대일로 통합하느냐”고 주장했던 건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이미 25년 넘게 다른 길을 걸어온 국민생활체육회로서도 할 말은 있다. 소수 엘리트 선수만 지원하는 대한체육회의 예산(약 2200억 원)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생활체육회(941억 원)보다 2배 이상으로 많은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 입김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분가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정치적 논리에 의해 두 단체가 나뉘다 보니 지난 세월 두 조직 모두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건 공통된 아픔이다. 엘리트 체육 단체는 정치인이 회장을 맡는 게 관례처럼 굳어졌고, 생활 체육 무대가 정치인들의 ‘표밭’으로 둔갑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 민주화해야 산다

체육계에서는 “통합 체육회가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한 체육계 원로는 “언제부턴가 시도 단체장이 체육회장 자리를 맡는 게 당연한 일처럼 돼 버렸다. 예전에는 지방 체육회가 관(官) 조직처럼 움직였는데 지방 선거를 실시한 뒤로는 정치 조직이 다 됐다”며 “예산 편성 등 정책 수립을 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으니 시도에서 체육회 예산을 깎아도 대의원 총회에서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그 대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각 경기 단체 회장인데도 그렇다”고 말했다.

일본은 회원 선거를 통해 각 지역 체육협회장을 뽑는다. 통합체육회도 정당에서 탈당한 지 2년이 지나야 회장 선거에 나올 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통합체육회 회장은 시도 체육회로부터 추천받은 1만5000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1500명이 투표로 뽑는다. 통합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국민생활체육회 출신이 맡고 사무차장과 선수촌장은 대한체육회 몫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대한체육회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체부에서 스포츠 개혁 작업을 벌이면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체육단체 임원의 중임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자리를 맡고 있는 대한체육회 인사 중 다수가 옷을 벗어야 한다. 대한체육회가 계속 몽니를 부리는 것이 이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도 “대한체육회 눈에 보이는 건 자기 자리뿐”이라고 비판했다.

안양옥 체육단체 통합준비위원회 회장은 “내 편 네 편을 나눌 게 아니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세(勢)가 늘어나고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가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체육인들끼리 계속 밥그릇 싸움을 벌이면 결국 ‘체육은 정부에서 돈 안 주면 안 된다. 정치인들이 끌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중 국민생활체육회장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단체 통합은 체육 선진화를 위한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라며 “조직의 통합을 뛰어넘어 기능 통합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인들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벌어야 산다

통합체육회가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당장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돈 문제가 걸려 있기에 특히 그렇다. 문체부는 “국고 3000억 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최소한의 관리 및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교체육진흥법, 국민체육진흥법 등으로 산재돼 있는 법률도 통합 작업이 필요하다.

통합 체육회 역시 민간 조직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관건은 역시나 자체 예산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이론적으로 모든 국민이 통합 체육회 회원이 될 수 있는 만큼 회원제를 통해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점에서 참고할 수 있는 나라 역시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생활 체육에 주력하고 있는 지자체별 체육회가 공익재단법인을 설립한 뒤 체육 시설 운영 등을 통해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이 돈으로 광역 단체 이상은 엘리트 체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기초 지자체는 생활 체육에 집중하고 있다.

2013년 공익재단법인이 된 교토시체육협회는 각종 수익사업으로 연간 3억500만 엔(약 32억5000만 원)을 벌어 이 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간다. 교토 시는 법인 자본금 1억1800만 엔(약 12억5600만 원) 중 3000만 엔(약 3억1900만 원)을 출연한 게 전부다. 체육협회는 모든 시민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체육 시설을 임대해 살림을 꾸려 나간다. 교토에서는 주말에 시간당 3390엔(약 3만6300원)이면 천연잔디가 깔린 야구장을 빌릴 수 있다. 체육관도 제일 비싼 곳이 주말에 시간당 1850엔(약 2만 원)이다. 당연히 활용도도 높다. 한국에서는 인조 잔디를 깔아 놓고 경기당 40만 원을 요구하는 야구장이 드물지 않고, 하루 사용에 75만 원을 받는 시립 체육관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생활 체육인들이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할 때 지자체에서 기껏 지어 놓은 스포츠 시설은 사용자가 없어 파리만 날리는 모순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75만 원을 받는 체육관은 수익 문제로 컨벤션 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 인정받아야 산다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한체육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체육회 통합 문제를 끌고 간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15일 발기인 대회를 앞두고 “새 통합체육회 정관이 발기인 대회 전 IOC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I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정관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는 IOC와 사전에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통합 체육회 정관을 받아 본 IOC는 “올림픽을 위한 준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차질을 가져올 수 있는 어떤 일도 피해야 할 것”이라며 단체 통합을 올림픽 이후로 미룰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IOC 권고 사항보다 국내법이 우선하기 때문에 이 내용이 통합 일정에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종 문체부 제2 차관은 대한체육회 김정행 회장, 국민생활체육회 강 회장 등 대표단과 함께 IOC를 방문해 통합에 관한 내용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 회동에서 대표단이 IOC로부터 체육 단체 통합을 공인받으면 국내에서도 통합 작업은 탄력을 받게 된다. 통합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경우 IOC에 협조도 구할 수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일본#엘리트 체육#통합체육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