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100 서브 앞둔 그로저, 비상과 추락사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2월 18일 05시 45분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그로저는 가공할 서브로 V리그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공격 성공률 저하와 신경질적 태도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그로저는 가공할 서브로 V리그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공격 성공률 저하와 신경질적 태도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스포츠동아DB
OK저축은행전 공격성공률 46.77%
서브 대기록과 대비…부상·피로 탓


자유계약 외국인선수 제도의 마지막 시즌. 올 시즌 V리그는 외국인선수에 의해 많은 기록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우선 역대급 ‘트리플 크라운 풍년’이 들었다. 삼성화재 그로저가 시즌 18호·역대 100호를 달성했는데, 이는 한 시즌 최다 트리플 크라운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14∼2015시즌의 17개였다.

훗날 배구팬들은 2015∼2016시즌을 ‘서브의 난’으로 기억할 것이다. 많은 서브 기록이 교체됐다. 그 중심에는 그로저가 있다. 한 경기 최다서브 15개는 V리그가 존재하는 한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누구도 가지 못한 서브의 길을 개척한 그로저는 남은 정규리그 5경기에서 또 하나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바로 100서브다. 최근의 기세로 본다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달성된다면 이 또한 난공불락의 기록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역대 서브왕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지는 그로저의 놀라운 서브 능력

V리그가 출범한 2005시즌은 20경기 체제였다. 2005∼2006시즌 이후로는 30경기, 35경기, 36경기 체제였다. 2005∼2006시즌부터 V리그 남자부 역대 서브왕의 기록을 그로저와 비교해봤다<표 참조>. 초창기 서브왕의 서브는 41∼55개였다. 2006∼2007시즌 보비의 55서브는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한 수치였다. 최초의 서브왕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했다. 이후 마틴이 60개 관문을 처음 돌파했다. 2014∼2015시즌 시몬은 70개를 넘어섰다. 올 시즌 그로저는 80개를 뛰어넘어 90개를 기록 중이다. 삼성화재는 6라운드 5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로저의 올 시즌 행보로 보자면 사상 첫 100서브 달성도 가능하다.

그로저는 한때 세트 평균 0.94개의 서브를 기록한 적도 있다. 17일 현재 0.857개다. 그로저의 서브 달성이 많아지면 이 수치도 올라갈 것이다. 세트 평균 1개를 넘어선다면 세계 배구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그만큼 그로저의 서브는 위력적이다.

그로저, 서브는 여전히 좋지만 공격 성공률 추락

지금 그로저를 보는 2가지 엇갈린 시선이 있다. 서브와 공격수치 때문이다. 전자는 긍정적 요소다. 후자는 앞날을 불안하게 만든다. 16일 OK저축은행과의 6라운드 홈경기에서 그로저는 이를 모두 노출시켰다. 이날 혈투에서 그로저는 6개의 서브를 성공시키며 OK저축은행이 쥐고 있던 주도권을 빼앗아왔다. 그 덕분에 삼성화재는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2세트 이후 그로저 때문에 더 쉽게 이길 경기를 5세트까지 끌려갔다. 그로저의 공격이 자주 블로킹에 걸리면서 삼성화재는 매 세트 고전했다. 이전까지 삼성화재는 한 번 흐름을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경기를 끝냈다. 상대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고 버티는 사자가 연상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로저는 이날 OK저축은행에 무려 9개의 블로킹을 당했다. 공격 성공률도 46.77%로 떨어졌다. 그로저는 1라운드부터 53.75% ∼55.99%∼54.89%∼46.15%∼52.32%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다. 4라운드에는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유럽예선전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경기에 투입되는 등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수치가 떨어졌지만, 그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50% 이상은 유지했다.

남자팀의 주 공격수라면 공격 성공률 50%를 넘겨야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16일의 그로저는 공격수로서 낙제였다.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도 경기 후 냉정하게 그 점을 지적했다.


● 왜 지금 그로저는 공격을 힘들게 하는가?

그로저는 외국인 공격수로서 압도적 신장을 갖추고 있진 않다. 그 대신 빼어난 점프로 이를 상쇄한다. 마치 공을 타고 때리듯 하며 공격을 성공시킨다. 206cm의 레오(전 삼성화재)가 가볍게 떠서 회초리처럼 부드럽게 때린 것과 비교하면, 200cm의 그로저는 높은 점프와 파워로 상대를 압도한다. 그러나 최근 점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세터의 공을 위에서 내리찍듯 하지 못하고, 밑에서 매달리듯 때리다보니 상대의 블로킹에 자주 걸린다. 공격각도가 낮아지다보니 상대 수비수가 더 쉽게 걷어 올린다. 공격 성공률이 떨어진 이유다.

주 공격수가 끝내야 할 때 끝내주지 못하면 팀은 힘들어진다. 삼성화재 세터 유광우도 이 때문에 16일 경기 4세트 막판 당연히 그로저에게 공이 올라가야 할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로저가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로저는 경기 도중 공격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신경질적인 모습도 보였다. 이전까지 삼성화재 외국인선수들이 코트에서 보여주지 않던 모습까지 노출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인지, 다른 불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걱정되는 장면이었다.

그로저의 공격 부진은 피로 누적과 무릎 부상 탓이다. 쉬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지만, 갈 길이 바쁜 삼성화재로선 그로저에게 쉴 시간을 줄 형편이 아니다. 삼성화재는 다음달 7일 KB손해보험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만일 준플레이오프(준PO)가 성사된다면 단판 대결은 3월 10일 벌어진다. PO 1차전은 3월 12일이다. 삼성화재는 KB손해보험전 이전에 PO 직행을 확정한 뒤 그로저에게 많은 휴식을 주려고 한다. 그 여부에 따라 시즌의 운명이 결정 날 가능성이 크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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