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대부업체 스폰서 참여…한국 프로스포츠 부끄러운 자화상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5시 45분


히어로즈는 8년간 뛰었던 목동야구장을 떠나 고척 스카이돔으로 이전한다. 경기 후 불 꺼진 목동야구장. 스포츠동아DB
히어로즈는 8년간 뛰었던 목동야구장을 떠나 고척 스카이돔으로 이전한다. 경기 후 불 꺼진 목동야구장. 스포츠동아DB
‘사채’라는 부정적 이미지 세탁 도구 전락
스포츠단 투자환경·독립경영 한계 노출


히어로즈가 일본계 금융기업 J트러스트 그룹과 네이밍 권리를 놓고 협상하는 것은 어쩌면 지엽적 문제일 수도 있다. 근본적 화두는 어쩌다가 일본 금융회사가 한국 프로스포츠단의 네이밍 스폰서를 하려고 나서는 지경까지 됐느냐다.

애당초 일본 대부업체들의 한국 진입 장벽을 너무 낮춰준 우리 정부에 ‘원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시중 자금이 모자라자, 정부는 그 대안으로 일본 자본을 끌어들였다. 가뜩이나 일본 내에서 강력한 규제를 받아 살 길이 막막했던 일본 대부업체들에게 한국시장은 활로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이들 회사는 단기간에 급성장을 거듭했고, 한국의 저축은행을 인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2000년대 후반 국내 저축은행들 중 상당수가 부실대출로 연쇄도산 위기에 처하자, 일본 대부업체들이 또 한번 한국 정부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업체에서 저축은행 중심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심지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매입까지 넘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자금력이라면 남부러울 것 없는 세력을 구축한 이들 일본계 금융기업의 최종적 숙원은 이미지 세탁이었다. ‘사채’라는 부정적 그늘을 벗어던지고, 한국민에게 우호적 인상을 만들어 뿌리를 내리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미 일본계 금융회사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넣은 CF를 방송에 반복적으로 내보내 호의적 인상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홍보활동에도 규제가 따랐고, 단발성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명분도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국민들 뇌리에 호감을 입력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가 스포츠와의 결합이었다. 이미 배구단에서 성공 사례가 나왔다. 이에 자극 받은 J트러스트는 한국의 최고 인기스포츠인 야구단에 메인 스폰서로서 참여를 시도한 것이다.

탄탄한 자금 지원 아래 독립경영을 하고 싶은 히어로즈와 이해관계가 일치한 지점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히어로즈도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런 히어로즈의 고육지책 뒤에는 겉만 화려한 한국 프로스포츠의 현실이 숨어 있다. 고용 없는 저성장의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에서 이제 대기업도 스포츠단에 투자할 여력이 많지 않다. 게다가 kt의 야구단 참여로 이제 할 만한 그룹은 다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J트러스트의 야구계 출몰은 건전경영이 가능한 기초 체력 없이 선수 몸값만 올려놓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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