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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Narrative Report]‘하루살이’ 2인자, 마음 연 하루하루 쌓여 8122일+α…

입력 2014-04-03 03:00업데이트 2014-04-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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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회사에서도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즘에 1년 계약직인 프로야구 코치로 23년째 한 구단에만 몸담기는 힘든 일이다. 재일동포인 두산 송재박 수석코치는 온화함과 성실성, 그리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프로야구 최장수 코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잠실구장에서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송 코치(왼쪽).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가난한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야구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공터에 모여 야구를 했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놀이 속에서는 오 사다하루(王貞治·왕정치·868개의 홈런을 친 일본의 대표적인 홈런타자)나 나가시마 시게오(미스터 요미우리라 불린 야구 스타)가 됐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야구부 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프로 선수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가 다닌 일본 야마구치 현 난요공고는 고시엔 대회(일본의 4000여 개 고교 중 지역예선을 통과한 40여 개 학교만 출전하는 최고 권위의 고교야구 대회) 출전은커녕 지역 예선 1회전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의 약팀이었다.

그런데 고교 졸업반이던 1974년 그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프로야구 다이헤이요 라이언스(현 세이부 라이언스)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3순위로 지명한 것. 다이헤이요 스카우트는 포수였던 그의 강한 어깨와 장타력을 눈여겨봤다.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지명 통보를 받고 ‘내가 정말?’이라고 자문했을 정도다. 놀랍고도 신기할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 정글에서 살아남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프로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송재박(58·사진)이 그다.

33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송 코치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1992년 OB(두산의 전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한 뒤 올해까지 23년째 같은 팀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3년간 쉬지 않고 코치 생활을 하는 것도, 그것도 한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것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흔히 프로야구 감독을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성적이 나쁘면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언제든 짐을 싸야 한다. 좋은 성적을 낸 감독은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으로 이기라는 주문을 받는다. 구단 고위층은 물론이고 팬들의 여론에도 신경 써야 한다. 실제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구단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감독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감독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라도 받는다. 감독직을 맡는 동안은 힘도 있고 권위도 있다. 반면 감독과 선수 사이에 낀 코치는 권한은 별로 없는데 책임과 의무는 많다. 감독의 눈에서 벗어나거나 구단으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으면 한순간에 실직자가 된다. 자신의 부진을 코치 탓으로 돌리는 선수들도 많다. 다년 계약을 하는 감독이 ‘파리 목숨’이라면 1년 계약직인 코치는 ‘하루살이 목숨’이다. 그런 치열한 정글에서 그는 23년째 같은 자리를 지켰다.

○ 무채색의 도화지

현역 시절 그는 특출 나지 못했다. 1978년 일본 프로야구 크라운 라이언스에서 데뷔한 뒤 10시즌 동안 1군에서는 27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세이부 시절이던 1980년대 주전 포수 노무라 가쓰야의 부상 때 76경기에 출전해 8홈런을 때린 게 최고 성적이다. 1983년 다이요로 트레이드된 뒤로는 주로 외야수로 뛰었다. 일본 야구 통산 타율 0.229에 홈런 21개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 씨의 권유로 1988년 테스트를 통해 OB에 입단하면서부터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첫해에는 타율 0.310에 13홈런, 51타점의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하향세를 보였고, 1991년 태평양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그를 붙잡은 것은 OB의 코치 제안이었다. 이후 그는 타고난 성실성으로 인정을 받았다. 주변 상황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1992년 처음 코치가 됐을 때 보좌한 감독은 윤동균이었다. 이후 김인식 감독(1995∼2003년), 김경문 감독(2004∼2011년), 김진욱 감독(2012∼2013년)이 부임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송일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대개 감독이 바뀌면 코치진이 대폭 물갈이된다. 자신과 뜻이 맞는 코치를 데려오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송 코치는 어떤 감독이 와도 자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무채색 도화지와 같은 존재였다.

재일동포인 송 코치는 국내에 학연과 지연이 없다. 믿을 것은 오로지 실력과 성실성뿐이었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코치를 교체할 때는 감독이나 선수들의 평가가 기준이 된다. 그런데 송 코치와 관련해서는 한 번도 나쁜 말이 나온 적이 없다. 항상 우리 구단이 안고 가야 할 사람이라고 느껴 왔다”고 했다.

○ 화수분의 숨은 주인공

2000년대 두산의 트레이드마크는 ‘화수분 야구’다. 2군에서 키운 좋은 선수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두산이 매년 강팀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선수를 키우는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두산 화수분 야구의 숨은 주인공은 송 코치다. 송 코치는 2004년 2군 감독으로 부임해 좋은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한 김현수(26)가 대표적이다. 2006년 신고 선수로 입단했을 때만 해도 김현수는 방망이에만 재질이 있는 반쪽 선수였다. 당시 송 코치는 구단에 건의해 1루수였던 김현수를 외야수로 변신시켰다. 2군 경기에서 만세를 불러도(공을 머리 뒤로 빠뜨리는 것을 뜻하는 야구 은어) 김현수를 3번 또는 4번으로 기용하며 꾸준히 기회를 줬다. 송 코치의 믿음을 먹고 자란 김현수는 2008년 타율 0.357로 꽃을 피우며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김 단장은 “김현수의 발굴은 우리 팀 타선의 무게중심을 바꾸었다. 송 코치는 자칫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를 결정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고 했다. 민병헌, 오재원, 김재호, 고영민 등 현재 1군에서 뛰고 있는 주축 선수들도 모두 송 코치의 손을 거쳤다.

스타 선수의 뒤에는 그를 키웠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여럿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는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1군 타격 코치를 맡았던 1995년과 2001년 두산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송 코치의 ‘코치론’

선수들에게 송 코치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온화하고 소통이 잘되는 분”이었다. 주장 홍성흔은 “코치님이 정색하고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모든 걸 선수의 눈에서 보려고 노력하신다. 비유하자면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숲 속 같은 분”이라고 했다. 또 “선수 개개인의 심정과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너무 방망이가 안 맞을 때는 조용히 다가와 ‘아예 연습도 하지 말고 쉬어’라고 하셨다가 또 어떤 날에는 ‘오늘은 신나게 한번 해 보자’고 하신다”고 했다. 고영민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2군으로 온 날이면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 배려를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송 코치는 이에 대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코치들이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말투와 행동이 상당히 강하더라. 그때부터 만약 코치가 된다면 일방통행식의 지시가 아니라 소통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송일수 신임 감독이 송 코치를 수석코치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재일동포인 송 감독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1군 경험이 없어 선수단에 대한 이해도 떨어진다. 그때 해답으로 떠오른 게 송 코치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모두 능통하고 선수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송 코치는 감독과 선수 사이를 이어줄 적임자였다.

○ 현재에만 충실하자

은퇴한 야구인의 꿈은 감독이다. 프로야구 감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더불어 남자로 태어나 한 번 해볼 만한 3대 직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혹시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송 코치는 “올 시즌부터 수석코치가 됐지만 수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어떤 포지션을 맡든 일단 최선을 다하고 선수들과 함께 어울리며 팀이 이기는 데 기여하는 것만 생각한다”고 했다.

40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그는 “위치와 관계없이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살아왔다. “현재를 열심히 살자”는 게 그의 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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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로서 23번째 정규시즌이 열리기 하루 전 그는 ‘아타리메’(마른 오징어)를 씹는 자신만의 의식을 치렀다. 그가 태어난 야마구치 현에서 아타리메는 한 해의 행운을 뜻한다고 한다.

20년 넘는 코치 생활을 했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말을 아꼈기에 지금까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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