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를 부끄럽게 만든 중년 매너男, 미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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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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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아내-장모에 헌신…現캐디와 20년 넘게 호흡

1927년 개장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리비에라CC(파71) 18번홀 그린에서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계단 왼쪽에는 벤 호건(1912∼1997)의 동상이 있다. 전설의 골퍼 호건은 1947년부터 18개월 사이에 이 골프장에서 노던트러스트오픈 2회, US오픈 1회 등 3차례 정상에 섰다. 이런 사연으로 리비에라CC는 ‘호건의 오솔길’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20일 이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노던트러스트오픈 4라운드에서 호건이 벌떡 깨어날 것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1타 차 공동 2위였던 필 미켈슨(42·미국)이 18번홀에서 8m 버디 퍼트를 넣어 공동 선두가 됐을 때였다. 그린 주변 언덕을 꽉 채운 수천 명의 갤러리는 일제히 “와” 하며 탄성을 보냈다.

미켈슨은 ‘미스터 캘리포니아’로 불린다. 골프장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PGA투어 통산 40승 중 30승을 캘리포니아에서 거뒀다. 그는 이 대회에서 13번 출전해 우승 2회에 상금만도 최고인 292만 달러(약 32억8000만 원)를 벌었다.

홈 팬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극적인 2주 연속 우승을 노렸던 미켈슨은 최종 합계 7언더파로 빌 하스, 18번홀에서 버디를 낚은 키건 브래들리(미국)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312야드의 짧은 파4인 10번홀에서 치른 연장 두 번째 홀 러프에서 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타고 벙커에 빠지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경기 후 미켈슨은 자신을 둘러싼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며 정성을 다했다. 갖고 있던 모자에 사인을 받은 재미교포 심원석 씨는 “미켈슨은 실력뿐 아니라 따뜻한 인품을 지녔기에 인기가 높다. 차가운 타이거 우즈와도 대조를 이룬다”고 말했다.

미켈슨은 자상한 아빠이자 가정적인 남편으로 유명하며 사람과의 인연을 중시한다. 암 투병 중인 부인과 장모를 위해 헌신한 사연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담 캐디 짐 매케이는 1991년부터 20년 넘게 호흡을 맞추며 오랜 동반자가 됐다. 이날 미켈슨은 18번홀 버디를 낚은 흥분에 자칫 동반자였던 브래들리의 퍼팅 라인을 밟을 뻔하자 황급히 다리를 든 뒤 미안함을 표시했다. 전날 티샷한 볼이 한 갤러리의 반바지 안으로 굴러들어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사인한 장갑과 공을 선물하는 세련된 매너를 보였다.

우승 트로피는 2차 연장전에서 13m 장거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하스에게 돌아갔다. 하스와 브래들리도 우승을 다툰 미켈슨에게 경의를 표하며 “우상과의 멋진 승부였다”고 입을 모았다.

PGA투어에서 9승을 올린 제이 하스의 아들인 빌 하스는 지난해 플레이오프 우승 보너스로 1000만 달러(약 112억4000만 원)를 차지한 주인공. 지난해 투어챔피언십 2차 연장전에서 연못에 반쯤 잠긴 공을 쳐내 파를 지키는 묘기를 펼치며 우승했던 그는 이날 선두에 2타 뒤졌다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로스앤젤레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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