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그 모습처럼 화려한 피날레였다. 18번홀(파4)에서 1.8m 버디 퍼트를 한 공이 홀 속으로 사라졌다. 허공을 향해 오른 주먹을 날린 그는 모자를 벗어 갤러리의 환호에 답했다. 오랜 체증을 확 푼 듯 후련해 보였다. 타이거 우즈(36·미국)가 돌아왔다. 우즈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사우전드오크스의 셔우드CC(파72)에서 끝난 셰브런 월드챌린지에서 합계 10언더파로 우승했다. 재크 존슨(미국)을 1타 차로 따돌렸다.
2009년 11월 호주 마스터스 이후 섹스 스캔들, 부상, 이혼, 결별 등 쏟아지는 악재로 무관에 그쳤던 우즈. 749일 만에 트로피를 안은 그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공식대회도 아니고 자신이 주최한 이벤트 대회였지만 그 기쁨은 메이저 우승이라도 한 듯했다.
“황홀했다”는 그의 첫 소감만큼 짜릿한 승리였다. 16번홀까지 1타 차 2위였던 우즈는 남은 두 홀에서 버디가 절실했다. 반면 예전 같았으면 마지막 날 우즈가 입은 빨간 셔츠의 공포에 휩싸여 무너졌을 존슨은 돌부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플레이 속도를 늦춰가며 우즈를 압박했다.
하지만 우즈는 역시 우즈였다. 17번홀(파3)에서 9번 아이언으로 한 티샷을 핀 4.5m에 붙여 버디로 연결했다. 공동 선두가 된 그는 어퍼컷을 날렸다. 동타로 나선 18번홀에서는 3번 아이언으로 호쾌한 저탄도 티샷을 구사한 뒤 다시 9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해 승부를 결정지었다. 존슨이 먼저 퍼트를 한 것도 라인 파악에 도움이 됐다는 게 우즈의 얘기.
우즈의 부활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칼럼니스트 론 시라크는 ‘이륙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존슨은 “어떤 면에서 슈퍼맨이었다. 내년에도 최고가 될 것 같다”며 갈채를 보냈다.
지난 2년이 20년 같았을 우즈가 이중삼중의 중압감을 극복하고 우승하면서 그의 재기에 대한 주위의 의구심도 말끔히 씻어냈다. 우즈는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페어웨이 적중률이 48.9%(186위)에 그쳤다. 이번 대회에선 3번 우드와 롱 아이언 티샷으로 페어웨이를 지키면서 버디 기회를 노렸다.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 예리해졌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쐐기를 박는 클러치 퍼팅 능력도 되찾았다. 샷을 하기 전의 반복 동작도 예전보다 느려지고 세밀해졌다. 여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거듭된 추락으로 실종된 자신감이 이번 우승을 계기로 다시 싹트게 된 것은 내년 시즌 우즈의 경기 전망을 한층 밝게 했다. 최근 두 차례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우즈는 “지난해까지는 좌우로만 움직이는 1차원적인 골프였다. 요즘은 다양한 각도와 탄도를 낼 수 있는 구질이 가능해졌다. 션 폴리 코치와 연구한 스윙 변화도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우즈와 호흡을 맞춘 새 캐디 조 라카바는 “18명이 출전했든, 마스터스든 우승 자체가 큰 의미가 된다. 위너스서클에 재가입하면서 비로소 정상 궤도를 향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평가했다.
52위였던 세계 랭킹을 21위까지 끌어올린 우즈는 내년 1월 2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유럽투어 HSBC챔피언십으로 시즌을 연다.
우즈의 부활로 내년 PGA투어에서는 ‘골프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의 신구 대결이 불꽃을 튀길 것으로 전망된다. 매킬로이는 6월 US오픈에서 역대 최소타(268타)와 최다 언더파(16언더파),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22세 1개월) 등 각종 기록을 쏟아내며 우승해 골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매킬로이는 4일 유럽투어 UBS 홍콩오픈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호랑이’가 없는 사이 PGA 무대는 절대 강자가 사라진 혼전 양상을 보였다. 돌아온 우즈는 다시 필드를 평정할 것인가. 팬들의 가슴이 벌써부터 뛰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셰브런 월드 챌린지 ::
타이거 우즈 재단이 주최하는 이벤트 대회다. 1999년 첫 대회가 열렸으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공식 대회는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500만∼600만 달러(약 57억∼68억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세계 골프 랭킹 포인트도 준다. 메이저대회 우승자와 골프 랭킹 상위 선수 등 18명만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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