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떠나는 ‘영원한 캡틴’ 넥센 이숭용의 한마디 “후배들아 독사처럼 독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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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7시 00분


“난 X팔리게 그만두지는 않을 것”코치직도 거절 했던 당당한 큰 형님역대 최초 한팀 2000경기 출장 눈앞“지금 후배들 충분히 능력있다고 믿어해외 지도자 연수마치고 다시 온다후배들아 조금 더 힘내자”

넥센 이숭용. 스포츠동아DB.
넥센 이숭용. 스포츠동아DB.
지난 연말이었다. 넥센은 팀내 최고참 이숭용(40)과 연봉협상과정에서 코치직을 제의했다. 그의 성실함과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숭용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無)이적 2000경기 출장’이라는 목표를 87경기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내가 비록 선수로서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꾸준함이 없으면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가졌다. 그리고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자율훈련이 한창이던 목동구장에서는 그의 하얀 입김을 유독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2000경기 출장에 정확히 6경기를 남긴 5일, 넥센은 ‘영원한 캡틴’의 은퇴를 공식발표했다.

○당당한 이별소감 ‘내 눈물을 닦아준 팬들’


그는 이미 시즌 초반부터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라고 말하는 빈도수도 잦아졌다. 그리고 약 3주전, 김시진 감독 방의 문을 두드렸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매력은 당당함이다. “×팔리게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대로였다. 김 감독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불혹에 닿은 고참의 어깨를 두드렸다.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넘어갈 때, 제가 눈물까지 보였잖아요. 그 때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팬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프로18시즌 동안 꾸준히 격려해준 팬들에게는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1998년 한국시리즈 생각하면 지금도 떨려

이숭용은 현대왕조 우승신화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 플레이오프 경기까지 합치면 이미 2000경기를 훌쩍 넘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요? 음…. 1998년 인천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지요. 그 때 제가 중견수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처리했어요. 아, 그런데 그 역사적인 공을 관중석으로 던져버려서 선배들에게 엄청 혼났지 뭐예요. 그 공 가지고 계신 분이 어디 있을텐데….”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그의 목소리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시절을 추억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생긴단다.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 4회. 그 중 3회는 우승 확정의 순간, 이숭용의 글러브 안에 공이 있었다. 선수생활 중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억이다.

○후배들이 더 독해졌으면….


하지만 예전의 영화는 이제 무색해졌다. 현재 넥센의 위상은 고춧가루 부대. 이숭용은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패배에 길들여지면 안 되는데…. 승리에 대한 열망을 가지라고,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야구를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후배들 충분히 능력이 있거든요.”

그라운드가 뜨거워지던 6월이었다. 이숭용은 2군행을 통보받았다. 그 때 “더 진중하게 보이고 싶어” 6년 만에 귀고리도 뺐다. 2군 12경기 타율은 무려 0.419였다. “2군에 갔을 때 서운하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 다녀왔다 싶어요. 앞으로 지도자도 해야 하잖아요. 강진에 있는 어린 선수들의 마음도 알게 되고….”

넥센은 “이숭용이 해외 지도자 연수를 마친 뒤 넥센 코치로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원한 캡틴’의 야구인생 2막은 어떻게 펼쳐질까. 화려한 버라이어티 쇼는 아니었지만, 잔잔한 드라마와 같았던 1막은 18일 목동 삼성전에서 마무리된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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