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페]日무대 8년 이승엽, 그가 존경스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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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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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이헌재 기자
지난해 이맘때 김태균(29)은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에서 최고 타자 대접을 받았다. 전반기에만 18홈런에 73타점을 올렸다. 두 부문 모두 퍼시픽리그 선두였다. 퍼시픽리그 최다 득표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서 만난 김태균은 극심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난 많은 돈 받고 온 용병 아닌가. 한 경기라도 못 치면 견딜 수 없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가끔 내가 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후회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겉보기엔 화려해도 외국에서 야구한다는 게 보기처럼 쉬운 게 아니다. 잘해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니 야구가 안 될 때는 말할 나위가 없다.

27일 불거진 김태균과 롯데의 계약 파기는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태균은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뛰는 자체가 불안했다. 임신 중인 아내도 걱정됐다. 경기에 집중할 수 없으니 여기저기 부상이 생겼고 야구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김성근 SK 감독은 “너무 나약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지만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를 했을 만큼 김태균은 절실했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오버랩되는 인물이 오릭스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35)이다. 일본에서의 마음고생으로 따지면 이승엽만 한 선수가 있을까 싶다.

조성민 정민철 이종범 이병규 이범호 등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일본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그 힘든 생활을 이승엽은 8년째 계속하고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본 진출 첫 해인 2004년 롯데에서는 후보였고 이듬해에는 플래툰 시스템(오른손 왼손 투수에 따라 엇갈려 기용하는 것)으로 뛰었다. 요미우리에서는 4번 타자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난 2년간은 1, 2군을 오르내리며 온갖 수모를 당했다. 이승엽은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명예회복 하나만을 바라보고 올해 오릭스로 이적했다.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머물기도 했지만 전반기 막판부터 페이스를 회복해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강자는 이승엽이다. 잠시 잊고 있던 그의 인내가 새삼 존경스럽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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