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여자오픈]유소연이 복기한 우승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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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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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서희경 한번 이긴 기억도 큰 힘…
티 박스 서니 편안… 코스 눈에 훤히 들어와 공격적 플레이

유소연(21·한화)은 승리를 확정한 뒤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하늘이 도와준 것 같다”는 소감처럼 그의 US여자오픈 정상 등극에는 운도 따랐다. 4라운드 잔여 경기와 연장전을 똑같은 조건의 3개 홀에서 치러 결정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유소연은 11일 4라운드를 15번홀까지 마친 뒤 일몰로 중단했다. 3개홀을 남긴 상황에서 서희경에게 1타 뒤졌다. 숙소에서 그는 오후 10시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다음 날 첫 번째 티샷을 해야 할 16번홀(파3)이 맴돌았다. 겨우 잠자리에 든 그는 다음 날 오전 8시 16번홀 티박스에 섰다. “하도 얼굴이 굳어 있으니까 캐디가 좀 웃으라고 하더군요. 평소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 홀에서 티샷은 벙커에 빠졌다. 위기였다. 절묘한 벙커샷으로 공을 컵에 바짝 붙여 파를 한 뒤 17번홀(파5)에서도 파를 기록했다. 이제 18번홀(파4)에서 꼭 버디를 해야 서희경과 동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세컨드 샷을 핀 2m 지점에 떨어뜨렸다. “다른 선수들이 싫어하는 슬라이스 라인을 좋아하거든요.” 버디를 낚은 그는 18개 홀 연장전을 떠올렸다. “예전 세리 언니가 그랬잖아요. 그런데 3개홀 연장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방금 돌았던 바로 그 세 홀에서요.”

티박스와 핀 위치가 똑같았기에 유소연은 한결 편했다. “2년 전 연장전에서 희경 언니를 이겼던 기억도 자신감을 줬어요. 그때처럼 티샷 순서도 제가 뒤였고요.” 유소연은 연장 들어 코스가 훤히 들어오면서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17번홀 세 번째 샷은 4라운드 때와 똑같은 거리가 남았죠. 그때 친 샷은 10야드가 짧았기에 이번엔 50도 웨지 대신 피칭웨지를 잡아 버디를 낚았어요.” 서희경이 이 홀에서 보기를 해 순식간에 2타를 앞선 유소연은 18번홀 세컨드 샷 지점에서 175야드를 남겼다. “4라운드 때처럼 5번 아이언으로 쳤는데 컵 1.2m에 붙였죠. 그린에 올라가는데 갤러리들의 박수가 쏟아지면서 이젠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LPGA 2년 출전권 획득… “美투어 고민해 볼 것”▼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될까요?”

우승 직후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일정에 급한 용무를 볼 시간도 없었던 유소연은 서서히 큰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는 사인을 받고 싶어 하는 미국인 갤러리 수십 명이 펜과 모자,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골프협회 박물관에 전시할 소장품을 달라는 요청에 쓰고 있던 오렌지색 모자를 벗어줬다.

우승 비결 세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욕심을 내지 않았고, (신)지애 언니 캐디를 했던 딘 허든과 호흡이 잘 맞았으며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캐디 허든은 까다로운 그린과 고도가 높아 거리 계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조언을 해줘 혹독한 러프와 3퍼트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골프를 치면서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라도 그만두겠다”고 당차게 말한 유소연은 “필라테스와 헬스 등으로 체력을 길렀고 몸통 스윙으로 교정한 효과를 봤다. 이번에 샷감이 너무 좋았고 운도 따랐다. 퍼팅은 내가 봐도 끝내줬다”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으로 유소연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년 출전권을 보장받았다. 이번 주 안에 신청하면 당장 올해부터 미국 무대에서 뛸 수도 있다. 유소연은 “원래 미국 투어에 가려면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야 한다. 굉장히 힘들고 두려운 과정인데 건너뛰게 됐다. 구체적으로 진로를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미국 드라마 CSI, 보스턴 리걸, 모던 패밀리를 빨리 보고 싶다”는 유소연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며칠 머물다 다음 주 에비앙마스터스가 열리는 프랑스로 떠난다.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큰 아웃렛 매장이 있대요. 꼭 가보고 싶어요. 호호.” 메이저 챔피언 유소연은 어느새 쇼핑을 즐기는 그 나이 또래가 돼 있었다.

콜로라도스프링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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