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 대신 수의…“죄송하고 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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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7시 00분


승부조작 K리거들 첫 공판…창원지법을 가다

선수 10명·브로커 2명·전주 2명 기소
재판장 신문에 “혐의사실 인정” 답변
김정겸 집행유예·전주 징역2년 구형
검찰, 제주·광주 출신 선수 추가 소환

승부조작 피의자들의 1차 공판이 28일 창원지법에서 열렸다. 재판을 마친 뒤 한 선수가 가족들과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창원|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승부조작 피의자들의 1차 공판이 28일 창원지법에서 열렸다. 재판을 마친 뒤 한 선수가 가족들과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창원|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프로축구 선수들이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이란 초유의 사건에 연루돼 법정에 선 28일 창원지법은 오전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4월 K리그 컵 대회 대전-포항, 광주-부산 경기 승부조작에 참여했거나 스포츠토토 불법 베팅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14명의 표정은 잔뜩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선수 출신 김 모씨 등 승부조작 브로커 2명, 승부조작 비용을 댄 전주 2명, 승부조작 가담 선수 9명과 자신이 뛴 경기에 불법 베팅을 한 김정겸이 포함됐다.

형사6단독 김기동 판사 심리로 진행된 1차 공판에 앞서 법원 1층 로비에서 김정겸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사건이 터진 뒤 포항에서 짐을 꾸려 곧장 서울로 이사했다. 못난 가장을 둔 가족들의 삶이 걱정된다.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이란 짤막한 한 마디를 한 그는 이곳저곳 서성이며 초조한 모습이었다.

가족, 변호인과 함께 법원을 찾은 강구남, 곽창희, 이명철, 이중원 등 전 대전 선수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한데 모여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몇몇 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창창한 어린 아들의 딱한 처지를 괴로워했다. 모 선수 어머니는 “내가 죄인이다. 아들 대신 죗값을 치렀으면 원이 없겠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고 후회스럽다”며 고개를 돌렸다.

오전 9시52분 피고인 이름이 차례대로 호명되고, 앞서 거론된 불구속 피고인들이 착석하자 구속된 브로커들과 박상욱, 김바우, 신준배, 양정민, 성경모 등이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유니폼이 아닌 낯선 수의를 입은 선수들의 얼굴은 초췌해 있었다. ‘찰칵’하는 수갑 푸는 소리가 들리자 장내는 일순 고요해졌다.

검찰에 기소된 프로축구선수들 이름이 적힌 공판 안내문이 재판정 입구에 붙어있다. 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검찰에 기소된 프로축구선수들 이름이 적힌 공판 안내문이 재판정 입구에 붙어있다. 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장내 정리를 위한 10여 분이 흐른 뒤 오전 10시 정각에 시작된 재판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의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신문에 모두가 “인정한다”고 대답하자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검사측이 “현재 진행 중인 승부조작 수사에 이들 피고인들 중 일부가 관련돼 있어 모든 조사가 끝난 뒤 전체 속행을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정겸 측 변호사는 “오늘 결심을 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검찰도 김정겸과 전주 2명에 한해 결심 공판에 동의했다. 증인신문 없이 재판이 이어졌다. 검찰은 김정겸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구형했다. 전주 이 씨와 곽 씨에게는 각각 징역 2년씩을 구형했다.

이어진 최후진술. 전주 2명은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대답한데 반해 “재판부의 선처를 부탁드린다”는 변호인의 변론 이후 김정겸은 “제 행동이 얼마나 무모하고 잘못된 일인지 깊이 깨닫고 반성한다. 아끼는 후배(김바우)가 승부조작을 제의했을 때 하지 말라고 말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재판장이 “언제쯤 다음 공판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검찰은 “피고인 일부가 현재 조사건과 연루돼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쯤”이라고 답했다. 예상보다 긴 수사 시일에 법정에서는 짧은 탄식이 들렸다. 검찰은 “좀 더 수사에 박차를 가해 2주 내에 마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재판장은 “7월12일 오전 10시에 다음 공판을 열겠다”고 결론 내렸다.

공판과는 별개로 검찰은 전남, 상주, 제주 등을 상대로 한 2차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차 수사 때처럼 대부분이 구속 처리됐다. 정윤성 등 전남 2명이 이미 구속됐다. 강원의 박 모, 전북 염 모, 상주 박 모와 주 모, 부산 이 모, 전 대구 김 모 역시 구속 기소됐다. 전남 백 모 선수는 자진신고 형태로 검찰에 들어와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창원지검은 작년까지 제주에서 뛴 최 모와 전 모 선수 등 추가적으로 선수들을 소환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광주 상무(현 상주)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 중 몇몇은 자진신고 형태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남장현 기자 (트위터 @yoshike3)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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