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벼랑위를 걷는 코칭스태프, 당신은 음지의 영웅입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6월 17일 07시 00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야구가 가장 그렇다. 어느새 막내 동생도 모자라 조카뻘인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보면, 내 나이도 이젠 제법 많다는 사실이 실감나서 착잡해지곤 하니 말이다.

그렇게 내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 사회인이 되고 경력을 쌓는 동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선수들은 코칭스태프가 되어 익숙하지 않은 등번호를 달고 덕아웃에 서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큼지막한 홈런을 날릴 것 같고,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저 멀리서 달려와줄 것만 같은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선수의 고충보다 코칭스태프의 희로애락에 더욱 관심이 간다. 투수가 경기 초반부터 무너질 때면 덕아웃에서 녹고 있을 투수코치의 애간장이 마음 아프고, 신인 타자가 얼토당토않은 스윙으로 삼진을 당하면 우리 사람 좋은 타격코치가 괜히 자신을 책망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속상하다.

패배한 날에는 팬들의 눈이 두려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숙소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자책한다는 모 코치의 고백에 눈시울을 붉힌 적도 있다.

최근 두산 베어스의 김경문 감독이 전격 사퇴했다. 두산팬들은 물론이고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큰 선물로 추억하는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일련의 사건과 성적 부진을 겪는 동안 갈등과 고충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염려되고, 더불어 남 일 같지 않다는 7개 구단 감독님들의 한마디가 가슴 아프다.

매일같이 승패로 명암이 갈리고 성적과 데이터로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 덧없는 줄 알면서도 후회와 자책으로 시달리게 되는 일상. 여기 더해지는 팬들의 비난과 책망은 아마도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무게이리라.

어쩌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잘 해야 본전’이 숙명일지도 모른다. 승리하면 박수갈채와 영광은 선수의 몫이고, 패배에 따른 질책과 비난은 고스란히 코칭스태프에게 돌아오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하거나 자책하고 있을 코칭스태프에게 팬으로서 한마디 꼭 하고 싶다.

비록 이제는 그라운드 한쪽에 비켜 서 있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자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팬들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우승의 순간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고단한 일상 속에 한번씩 떠올리고 힘을 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한화 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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