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수 “나는 골에 미친선수 진짜 영웅 됟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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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7시 00분


대표팀 시련 딛고 새출발…인천 스트라이커

역전골과 바꾼 눈부상 인천 유나이티드 유병수가 전훈지 목포 축구센터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습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와 부딪혀 오른쪽 눈두덩이를 12바늘이나 꿰맸다.
역전골과 바꾼 눈부상 인천 유나이티드 유병수가 전훈지 목포 축구센터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습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와 부딪혀 오른쪽 눈두덩이를 12바늘이나 꿰맸다.
인천 유나이티드 유병수(23)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는 축구 선수가 또 있을까. 올 시즌까지 포함해 이제 프로 3년 차.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쁨보다 아쉬움이, 행복보다는 아픔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서글픔도, 씁쓸함도 모두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한다.

“이제 모든 걸 갖춘 선수로 거듭 나겠다”고 다짐하는 유병수다. 인천 허정무호가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목포축구센터에서 만났다. “오늘 겪은 아픔이 언젠가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달라진 나를 기대해 달라”고 했다. 한층 성숙해진 유병수와의 대담을 공개한다.

● 아시안컵 그 이후

1월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불과 한 경기 출전. 그나마 교체 투입이 이뤄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벤치로 돌아갔다. K리그 2010시즌 득점왕으로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 더 기회를 노렸으나 끝내 더 이상 자존심 회복의 찬스는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 아시안컵 대표팀에 선발됐을 때 정말 자신감이 넘쳤다. 컨디션도 좋았고,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다. 한데,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다. 내게 실망도 컸다.”

카타르에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 안. 어둠이 가득 한 창밖을 내다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똑같은 아픔은 반복하지 않으리라. “부족한 게 정말 많구나. 그냥 그곳에 있었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허 감독은 아픔을 안고 돌아온 유병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고마웠다. 별 말씀이 없었다. 현역은 물론, 트레이너와 코치, 감독까지 두루 경험하신 분이기에 제 심정을 이해하시는 것 같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조광래 감독께서 원하는 축구가 있었다. 작년 12월 서귀포 전지훈련부터 계속 주문한 게 있었다. 내가 완벽하지 못했다. 좀 더 많이 뛰었어야 했는데….”

아시안컵이 끝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터키 트라브존에서 열린 터키 대표팀과의 평가전. 다시 대표팀에 선발되리란 믿음은 없었다.

“호주와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이 끝난 뒤 ‘아, 내가 다시 뽑히긴 어렵겠구나’란 감이 왔다. 요즘 잠을 잘 때면 머릿속에 호주전 교체 투입된 뒤 다시 벤치로 돌아왔던 꿈을 꾼다. 마음이 아프다.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FA컵 8강전 부산 아이파크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터트린 유병수가 세리머니하고 있다.
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FA컵 8강전 부산 아이파크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터트린 유병수가 세리머니하고 있다.


● 내가 거칠다고?…내 축구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카타르에서 한바탕 논란을 빚었던 미니 홈페이지 사건이다. 일부 언론에서 처음 제기한 당시 사태는 조 감독에 대한 ‘항명’으로까지 비쳐졌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했으나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화제를 바꿨다. 그에게 따라붙는 ‘거친 축구’에 대해서였다. 그러나 ‘거친 스트라이커’라면 역설적으로 상대 팀에게 가장 껄끄럽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판단하기 나름이다. 기준과 관점은 분명 다르다. 솔직히 내가 거칠게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스스로를 평가해달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유병수가 이런 대답을 했다.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득점에 미쳐있다?’는 것? 내 포지션은 공격수다. 골에 대한 욕심과 의지는 누구보다 강하다.”유병수

유병수를 만났을 때, 오른쪽 눈두덩이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16일 오전 내셔널리그 목포시청과 연습 경기 때 입은 상처였다. 인천과 목포시청이 1-1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역전 골을 터뜨린 뒤 상대 수비수와 부딪혀 눈가가 조금 찢어졌다. 12바늘을 꿰맸다. 득점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느낌은?

“행복하다. 기분도 좋고 다시 한 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유병수의 축구 인생은 시련으로 점철돼 있다. 데뷔 시즌, 신인왕을 놓쳤고 지난 시즌에는 득점왕을 하고도 K리그 베스트11에 포함되지 못했다. 올해는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고통이 컸다. 실제로 K리그에서 득점왕이 베스트11에 들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정말 1년 간 죽어라 뛰었는데. 보람이 조금은 없어졌다고 할까. 프로는 자신이 한 만큼 얻어간다고 하는데. 베스트11은 두고두고 아플 것 같다.”

잠시 흐른 정적. 뻔하지만 또 한 번 물어봤다. 인천이, 그리고 허정무 감독이 유병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처음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시킨 팀, 내 이름을 널리 떨칠 수 있게 만들어준 팀. 득점왕 영광을 누리게 한 아주 고마운 팀이다.”

허 감독에게도 고마운 감정뿐이다. 이제야 털어놓지만 허 감독과 인연을 맺을 것이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한다. “0.5% 가능성도 예상 못했다. 허정무 감독께서 인천에 온다는 루머가 나돌 때에도 근거 없는 소문이려니 했다. 허 감독께서는 득점 외에도 플러스알파를 채워주신다. 내 잠재력을 믿고, 맡겨주는 아주 소중한 분이다.”

마지막으로 새 시즌 각오도 털어놓았다. ‘일본 이충성처럼’이다. 이충성은 일본을 아시안컵 정상으로 이끈 뒤 “영웅이 정말 되고 싶었다”고 했다. 유병수도 마찬가지. 한 명뿐인 영웅을 향한 담금질.

“어릴 적부터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항상 경기를 해왔다. 골을 넣는 시나리오를 그린다. 올해도 영웅이 되고 싶다. 작년 득점만 했다면 올 시즌에는 ‘모두를 위한’ 영웅이 되고 싶다. 득점뿐 아니라 도우미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 유병수의 진짜 인생은 이제부터다.목포|글·사진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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