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아경기]카누 사제의 ‘외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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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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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1명… 선수 1명… 그리고 너덜너덜한 배 한 척…

■ 비인기 ‘카누 슬라럼’ 출전 정영성 감독-윤영중 선수

국내에서 카누 슬라럼은 낮은 인지도와 희박한 메달 가능성, 전략적 메달 종목인 드래건보트에 밀려 이번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선수 1명만 출전했다. 고독한 항해를 준비 중인 윤영중(오른쪽)과 정영성 감독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광저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국내에서 카누 슬라럼은 낮은 인지도와 희박한 메달 가능성, 전략적 메달 종목인 드래건보트에 밀려 이번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선수 1명만 출전했다. 고독한 항해를 준비 중인 윤영중(오른쪽)과 정영성 감독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광저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김연아의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은 전담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태환에게 수영하는 즐거움을 다시 가르쳐준 사람은 현재 그의 전담 코치인 마이클 볼이다. 전담 코치는 가능성이 큰 선수의 상징처럼 보인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카누 슬라럼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 선수는 윤영중(20·중원대)이 유일하다. 그는 정영성 카누 슬라럼 감독(44)의 전담 지도를 받는다. 감독 1명에 선수 1명이기 때문이다. 둘은 흡사 김연아와 오서 코치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카누 자체가 비인기 종목인 데다 그나마 관심도 아시아권 대회에서 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 스프린트 종목에 집중돼 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메달 전략 종목으로 드래건보트가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소외됐다. 결국 2명 이상 출전할 수 있었지만 출전 선수 1명이 종목 하나(슬라럼 카약 1인승)에 나서는 게 전부다. 윤영중은 13일 예선전을 치른다.

○ 너덜너덜한 배…외로운 싸움

10일 정 감독이 한국에서 가져온 경기용 배를 상자에서 꺼냈을 때였다. 그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배 앞부분은 황색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밑바닥에도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다른 나라 선수와 코치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저게 국가대표 선수의 배라니…’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익숙한 민망함이다. 윤영중은 “어느 국제대회를 나가도 테이프를 붙인 배를 갖고 오는 건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배는 1년 전 자비로 구입한 것이다.

사실 카누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다. 문제는 국내에 인공 슬라럼 경기장이 없다는 것. 강원 인제 내린천 같은 자연 급류에서만 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을 할 때면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배가 파손되기 쉽다. 경기장이 없으니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도 없다. 자연 급류에서는 계절에 따라 수량이 달라진다. 유속도 경기에 알맞은 빠르기가 나오는 경우가 적다. 10월 이후에는 아예 배를 띄우지 못한다.

국제대회를 치르는 경기장은 대부분 인공 경기장. 윤영중은 자연 급류와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는 경우가 많았다. 쓸쓸히 짐을 쌀 때면 열악한 현실이 야속했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는 광문고 2학년 때 학교 카누부 감독인 아버지의 권유로 슬라럼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슬라럼 종목이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거친 물살을 헤치는 짜릿함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지금도 배 타는 건 정말 재밌지만 아버지가 말했던 발전은 아직 요원하다.

정 감독은 “4년 후 열리는 인천 아시아경기가 카누 슬라럼이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회를 치르려면 당연히 경기장이 있어야 한다. 대한카누연맹은 2012년에 경기장을 하나 짓고 인천 아시아경기 전에 경기장을 하나 더 지을 계획이다. 슬라럼이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아닌 것도 큰 걸림돌이다. 2011년과 2012년 시범 종목을 거쳐 2013년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영중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정 감독은 “중국과 같은 환경에서 6개월만 훈련하면 충분히 중국을 따라잡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슬라럼은 종목 특성상 체격보다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중요한 경기다. 한국 선수들도 많은 경험을 쌓는다면 세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승은 제자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제자는 스승의 예언을 믿고 싶었다.

광저우=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카누 슬라럼""

초속 2m 이상의 급류 또는 역류에서 바위, 제방 등 장애물이 있는 250∼400m 이내의 코스에 설치된 18∼25개의 기문을 통과하는 경기. 통과 시간과 기술에 부과된 벌점을 합쳐 순위를 가린다. 잔잔한 물에서 경기를 치르는 스프린트 종목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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