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피눈물 흘리며 마운드 복귀…배영수는 ‘부활’ 아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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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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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배영수.
삼성 배영수.
몸이 너무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다, 무작정 길을 떠났습니다. 머리속에 꽉 찬 ‘포기’라는 단어. ‘이젠 정말 그만 하자.’ 대구에서 정동진까지 차를 몰면서, 수도 없이 다짐했습니다. 인적조차 드문 겨울 바닷가에서, 자꾸만 고개를 드는 미련을 떨쳐냈습니다. 그렇게 차 문을 여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배영수 선수 아입니꺼.”

돌아봤습니다. 활짝 웃는 한 남자. “아이고, 올시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배영수 선수 팬이에요, 팬.”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차에 탔습니다. 하지만 그가 운전하는 차는 어느새 대구로 향합니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외진 곳에서 저를 응원하는 분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2009년 초, 위기의 배영수(29·삼성·사진)는 그렇게 다시 야구공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가 토해내는 마음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007년에 팔꿈치인대 접합수술을 받고, 복귀 첫 해인 2008년에 9승을 했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컸어요. 그런데 남들은 안 그랬나봐요. 2009년 한 해 힘들었을 뿐인데, 제가 4∼5년은 못 한 줄 알아요. ‘배영수 이제 끝났네’, ‘구속이 결국 안 올라오네….’남들이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가 모두 상처였어요. 다들 끝났다고 하니까, 나중에는 나까지 ‘그런가 보다’ 싶어져요. 그 심정,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몰라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제게 구속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마운드에서 다시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어요. 어디 두고 보자고, 이를 악물었어요. 재활보다 더 답답한 건, 내가 던진 공이 내 마음대로 가지 않는 거예요. 그냥 미칠 것 같고, 돌아버려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안 해본 게 없어요. 프로야구 선수인 제가, 손목 스냅감 한 번 느껴보겠다고 미친 듯이 딱지치기를 했어요. 일부러 옷을 다 벗고 수백번씩 섀도 피칭을 하고, 발가락으로 콩알도 집고, 핸드볼도 던지고…. 정말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했어요.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무겁기만 했던 공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올해 후반기에는 제가 준비했던 것들이 결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할 수 있겠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거예요. 4차전 9회말 마지막에 삼진을 딱 잡는데, 온 몸이 짜릿하고 뭉클했어요. 그간의 일들이 필름처럼 촤르륵 지나간다는 거, 태어나 처음 느껴봤어요. 하지만 지금이 진짜 시작인 거예요. 전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가 될 거예요. 저만의 색을 내면서 오래오래 야구하는 예술가. 지금 말고 훗날 은퇴했을 때, 배영수가 어떤 선수로 평가받는지 지켜봐 주세요.”

숨쉴 틈도 없이 마음을 쏟아낸 그의 눈가가 어쩐지 붉어진 듯합니다. 품고 있었던 한이 그렇게나 많았던 겁니다. 사람들은 ‘부활’이라 하지만 배영수는 ‘출발’이라 합니다. 화려했던 옛 기억은 이미 지난해에 다 지워버렸다면서요. 대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갔던, 첫 마음만 채웠다고 합니다. ‘푸른 피의 에이스’ 배영수가, “새롭게 시작되는 야구 인생 2부를 지켜봐 달라”고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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