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월드컵 한 풀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7일 00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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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26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한국이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14분. 그라운드 중앙선 끝에 등번호 '20번'을 단 선수가 교체를 위해 다가왔다. 이동국(전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서 뛰던 선수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대기심이 13번을 빼고 20번을 투입한다는 전광판을 들었다. 곧 선발 출전했던 김재성(포항)이 들어오고 이동국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월드컵을 앞두고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출전이 불투명했다. 이동국의 발탁을 두고 언론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결국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을 선택했고 최종명단 23명에 이름을 올리며 월드컵 무대에서의 활약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박주영(AS모나코)과 염기훈(수원)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벤치에만 앉아있었다. 아르헨티나와이 조별리그 2차전에서 이동국은 그토록 원했던 그라운드를 밟았다. 하지만 단 10여분이었다. 1-4로 이미 승패가 기운 후반 36분 박주영 대신 교체 투입됐다. 공을 잡은 것도 몇 차례 되지 않았다. 어렵게 밟은 월드컵 본선 무대였지만 이동국은 냉정한 현실에 아쉬움을 씹어야만 했다.

결국 10여분만 뛰고 월드컵을 마치나 싶었지만 이동국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다시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동국은 25일 루스텐버그에서 훈련 뒤 가진 인터뷰에서 "12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더 못 기다리겠어요"라며 월드컵 출전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조급함보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편한 마음 만반의 준비를 한 채 결전을 기다렸다.

이런 이동국의 강한 바람이 허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이동국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됐다. 이동국이 그라운드에 나오자 2000여명의 한국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동국의 등장을 반겼다. 그리고 이동국은 30여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동국을 따라다니던 '비운'이라는 꼬리표는 이제 더 이상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포트엘리자베스=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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