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상대한다는 것은 역시 부담이었나 보다. 섭씨 7도, 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에 가까웠다. 선수들의 몸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12일 그리스와 1차전 때 보여준 활기찬 모습은 없었다.
"승패를 떠나 즐기겠다"고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벽은 너무 높았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와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의 환상적인 개인기에 이은 정확하고 짧은 패스, 그리고 조직력을 앞세운 아르헨티나에 시종 끌려 다니는 경기를 펼쳤다. 그렇다보니 수세적인 플레이를 해야 했다. 전반 볼 점유율은 62%대 38%로 두 배 가까이 밀렸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꿇리지는 않았다. 실력차로 밀리긴 했어도 허둥대지는 않았다. 수비 땐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했고 역습 땐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0-2로 뒤진 전반 인저리 타임 때 이청용(볼턴)이 추격골을 터뜨리면서 분위기는 살아났다. 하프타임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나올 때 골키퍼 정성룡(성남)과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주영(AS 모나코) 등은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후반 시작하기 전 그라운드 가운데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포지션으로 이동했다. 경기는 계속 아르헨티나에 밀렸지만 후반에는 전반보다 몸이 가벼웠다. 후반 들어 연거푸 내주며 다소 의기소침했지만 바로 전세를 가다듬었다.
1-4로 대패했지만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에 1-3으로 패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당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을 전담 마크했던 허정무 감독은 "우리는 겁을 잔뜩 먹어 경기다운 경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선들은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오늘 졌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날 아르헨티나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16강 진출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3일 더반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3차전에서 아프리카의 복병 나이지리아를 잡으면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를 할 수 있다. 이날 태극전사들이 세계 최강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섰듯 나이지리아를 만나서도 유쾌한 플레이를 한다면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은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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