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스키천국이다. 홋카이도부터 혼슈 최남단의 규슈까지 500여 개 스키장이 두루 분포해서다. 하지만 권할 만한 곳은 북위 37도 이북지역. 북에서 남으로 살펴보자. 홋카이도 전역과 혼슈 최북단의 아오모리와 그 아래 아키타, 이와테 현이 있다. 혼슈의 경우는 한반도와 마주한 동해변의 서북쪽에 주로 포진한다. 야마가타 니가타 도야마 세 현이 그렇다. 내륙으로는 저팬 알프스 연봉과 주변이다.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나가노와 인접한 기후 등 기타 알프스, 미나미 알프스의 후쿠시마 현이 그곳이다. 그중에도 접근성 좋은 곳이 있다. 직항로가 개설된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니가타 현이다. 소설 ‘설국’이 집필된 눈 마을 유자와(니가타 현)는 도쿄에서 신칸센이 운행(1시간15분)돼 더더욱 편리하다.》
스키시즌은 대개 12월부터 4월 말까지. 하지만 최적기는 2월부터 4월 초다. 기온도 낮지 않고 적설량도 풍부하며 요금(숙박 항공료)도 낮기 때문. 스키장 규모는 리프트 정상과 스키베이스의 고도차로 결정된다. 800m 이상이면 큰 편이다.
일본에는 스키장 형태도 다양하다. 산 아래 마을 형과 산중의 산장형, 우리와 같은 리조트형으로 나뉜다. 산 아래 마을형으로는 자오(야마가타 현)와 하쿠바(나가노 현), 유자와(니가타 현)가 있다. 산중 산장 형은 묘코고원(니가타 현)과 시가고원(나가노 현) 등 주로 고원지대 스키장이다. 리조트 형으로는 나에바 스키장(니가타 현)과 홋카이도의 대부분 스키장(클럽메드 사호로, 류스쓰)이 있다. 홋카이도의 니세코 유나이티드는 큰 산 아래 세 개 스키장과 마을이 서로 다른 사면에 들어선 경우다.
산 아래 마을형은 밤늦게까지 이자카야(전통술집)를 돌며 현지인과 어울려 술 마시기에 좋다. 리조트형은 우리의 스키장과 비슷하다. 기왕이면 나에바(니가타 현)처럼 ‘스키인 스키아웃’(현관 앞까지 눈에 덮여 스키를 타고 호텔을 오갈 수 있는 형태)형을 권한다.
나는 산중 산장형을 좋아한다. 이유는 산장에 온천이 딸렸고 또 료칸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 산장도 대개는 온천마을을 형성하는데 시가고원(나가노 현)의 경우는 11개, 묘코고원은 7개나 된다. 그래서 스키장도 시가고원 11개, 묘코고원 7개다. 이런 곳은 매년 찾아도 숙소와 스키장을 바꾸면 늘 처음 오는 느낌이다.
일본에는 아직도 보드 라이딩을 허용하지 않는 스키장이 있다. 시가고원의 오쿠시가가 대표적이다. 스키장 선택 시 참고해야 한다. 경비를 줄이려면 스키와 스키복은 가져간다. 여행사의 패키지상품을 구입한다. 일본 스키장은 공항에서 자동차로 서너 시간 거리가 대부분이다. 단체여행객은 전세버스를 이용하지만 개별 여행자는 수십만 원씩 하는 택시를 타야 한다. 일본 스키장은 공항에서 가까울수록 대개는 작다.
스킹할 때 고글과 모자는 반드시 챙긴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단체여행객이라면 일본어를 몰라도 큰 불편이 없다.
단, 사고에 대비해 숙소명함, 휴대전화(보조 배터리 포함), 슬로프 지도는 꼭 챙긴다. 출발 전 상해보험도 반드시 가입한다. 점심식사는 스키장의 식당을 이용하는데 가격은 700∼1200엔 정도. 맥주도 판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많으니 충분한 현금 준비도 필수.
야간스키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몇 년 전 자오 스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후 늦게 도착한 한국인 스키어 서너 명이 야간스키를 했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이곳은 산 아래 여러 마을이 포진한 마을형 스키장. 이들은 출발한 스키베이스를 찾아 헤매다 결국 민가도 없는 눈밭에 다다랐고 다시 오를 수가 없게 되자 눈 속에 굴을 파고 밤을 보냈다. 반면 마을에서는 새벽에 헬기까지 출동하는 밤샘 수색 소동이 빚어졌다. 1000만 원이 넘는 헬기출동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귀국해 문제가 됐던 사건이다.
글·사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넉넉한 스키장, 풍부한 자연설의 일본 ……게다가 After Ski의 묘미
한때,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는 1700개의 스키장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수치는 리프트 가동 회사를 기준으로 한 스키장(법인)수다. 하나의 산에 3개의 리프트회사가 별개로 영업했다면 3개라는 식이다. 그것을 우리식, 그러니까 하나의 산을 하나의 스키장으로 간주한다면 900개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지금은 그 절반쯤으로 줄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스키산업은 지구상에서 한국만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하향추세다. 겨울에 스키 말고도 할 것이 너무 많은 탓이다. 그 진원은 전통적으로 겨울스포츠가 강세였던 유럽과 북미, 그리고 일본이다. 추위를 피해 열대 지역으로 휴가를 간다든가 아니면 실내 스포츠를 즐기는 추세다. 게다가 스키는 돈도 많이 드는 스포츠다.
스키산업의 몰락세가 최고조를 이룬 것은 1990년대 초반.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들자 진정 기미가 돌았다. 스노보드와 카빙스키의 등장 덕분이었다. 새로운 장비는 당시 사람을 매료시켰다. 이유는 한 가지. 배우기 쉽고 훨씬 재미있어서다.
카빙스키를 보자. 이 스키는 카빙기술을 자체 내재한 기막힌 고안품이다. 카빙기술이란 플레이트를 기울여 양면에 댄 쇠심(에지)을 설면에 세운 상태로 회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스키 시절에는 고수만이 가능한 최고난도 기술이었다.
하지만 카빙스키는 달랐다. 이 배우기도, 구사하기 힘든 카빙기술을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히도록 스키 플레이트의 모양을 바꿨다. 젓가락형을 숟가락형으로. 그 효과는 대단했다. 플레이트 날을 살짝 들어올리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카빙 턴이 이뤄졌다. 그런데 그 카빙스키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유독 우리, 한국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만 해결되면 좀 더 즐겁게 스키를 즐길 수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충돌 위험이다. 그 위험은 스키 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다. 슬로프상에 너무 많은 스키어가 있는 한국적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런 만큼 상급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상급자용 슬로프는 언제나 텅텅 비어 있으니까.
카빙스키는 카빙기술을 모든 스키어에게로 해방시킨 걸작품이다. 그 카빙기술이란 다름 아닌 회전기술이며 그 회전기술이란 오토바이가 고속으로 질주하는 중에도 넘어지지 않고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 적용되는 물리학의 원리를 활용한다. 하지만 한국의 스키장에서는 이것이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기자의 경험이다. 1997년 무주리조트에서 동계유니버시아드가 폐막하던 날이었다. 공식행사가 끝나자 조직위가 선심을 썼다. 다운힐 경기를 펼친 최고경사 슬로프를 열어준 것이다. 일주일 내내 취재하고 송고하느라 스키를 탈 수 없었던 만큼 냉큼 튀어나갔다. 텅 빈 슬로프는 그야말로 ‘쏘기’에 최적이었다. 슬로프 중간. 시속 50km쯤 속도가 붙었을 때부터 회전을 시작했다. 세 번째 회전.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스키어와 충돌한 것이다. 그는 카빙스키의 급격한 회전을 예측 못해 나를 옆에서 들이받았다. 결과는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중상.
한국의 스키장에는 이런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서 중급자용 코스에서 자유로운 카빙턴은 위험천만이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일본의 스키장이다. 굳이 일본을 권하는 이유는 많다. 그 첫 번째는 사람이 적다는 것. 일본의 스키 인구는 격감일로에 있다. 그래서 언제 가도 한산하다. 그만큼 충돌 위험은 준다.
다른 이유는 풍부한 자연설이다. 설면이 푹신하다 보니 카빙기술을 구사하기가 훨씬 쉽다. 그만큼 넘어지지 않아 안전하다. 카빙기술은 양쪽 플레이트의 날을 동시에 설면에 세워 원심력을 극복하는 데 푹신한 설면에서라면 플레이트의 그립(설면을 붙잡는 것)이 훨씬 좋아져 좀 더 정확하고 쉽게 회전을 구사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애프터 스키(After Ski). 스키에는 두 종류가 있다. 스키와 애프터 스키 이렇게. 애프터 스키란 말 그대로 스킹 이후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애프터 스키는 정말로 독특하다. 게다가 환상적이다. 온천이 그 첫 번째다. 스킹 후의 온천욕.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가이세키 요리. 가이세키 요리란 일본의 정찬상에 해당된다. 중급 이상 료칸이라면 저녁식사로 제공되는데 기본 찬을 차린 독상에 5∼10개 요리가 차례로 제공된다. 거기에 전통주 사케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