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의 10번타자들] “대호야, 쌔리라!” “곰탱아, 넘겨라!”

  • 입력 2009년 9월 30일 2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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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역시 뜨거웠다.

초록과 감귤 빛이 적절히 조화된 다이아몬드 꼴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스탠드 위의 2만9000여 팬들의 시선, 그리고 이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기쁨의 함성과 안타까움의 탄성은 잠실구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롯데와 두산의 2009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30일 잠실구장은 전날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양 팀을 상징하는 흰색과 주황색 물결이 넘실대던 잠실벌 열전의 현장 분위기를 독자들과 함께 한다.

● ‘부산 갈매기’와 ‘미신’까지 총 동원한 롯데 팬

준PO 개막에 앞서 이틀 전 원정을 떠나와 서울에 머물고 있다는 부산 모 대학 캠퍼스 커플. 의심의 눈초리는 보낼 필요가 없다. 숙소가 달랐단다.

남성 K 씨는 “마, 승리하러 왔다 아이가. 오늘도 웃을 준비가 돼 있다”고 목청껏 외쳤다. 남자 친구의 오른 손을 꼭 잡은 채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던 여성 J 씨. “사실은 예, 어제 두산 선수들이 치킨을 먹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뭐, 우리 선수들은 모르겠지만 멀리서나마 힘을 실어주려고 오늘 깔고 앉을 곰이 새겨진 방석을 가져왔어요.”

부산에서 열릴 3~4차전을 관전하기 위해 이날 밤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간다던 이들 원정 커플이 아쉽게 됐다. 3루 쪽 스탠드를 꽉 채웠던 롯데 팬들이 조용하다. 두어 시간 전부터 입장,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부산 갈매기’를 신명나게 불렀고, 미신까지 총 동원했건만 무슨 영문인지 초반부터 밀린다.

3회 말 두산이 대거 4점을 뽑고, 5회 말 한 점을 추가하자 잠시 적막이 흐른다. 주황색 봉투를 뒤집어쓰고, ‘전매특허’ 신문지 응원을 펼치고 다시 기운을 불어넣지만 갈매기는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밀린 업무로 인해 늑장을 부린 바람에 티켓을 구하지 못했던, 1차전을 되새기며 반차를 쓰고 2차전 현장을 다시 찾은 롯데 팬 이 모(28·회사원) 씨는 넋을 잃고 있다. “아, 왜 이리 안되죠? 속이 타 죽겠네요. 서울 사람이라서 그런가? ‘마!’도 잘 외쳐지지 않고요. 맥주 맛도 나지 않네요. 그래도 마지막에 웃는 팀은 바로 저희 롯데가 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 순간,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을 연상케 하는 ‘흥분’이 가득한 그네들만의 함성, “가~르시아!”가 울려 퍼졌다.

● 끈기와 안정으로 맞선 두산 팬

역시 구단 마스코트다웠다. 롯데의 ‘부산 갈매기’가 꾸준함을 보여주기 보단 순간순간의 흥분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두산 팬들은 ‘끈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열정 가득한 함성을 지르는 것은 상대와 다를 바 없었지만 보다 꾸준했다. 점수를 뽑아도 비슷한 템포와 형태를 거의 유지했다.

대신, 이닝을 지날수록 조금씩 달궈지는 느낌이었다.

롯데 팬들은 점수를 잃는 순간,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면, 두산 팬들은 팀이 안타를 맞거나 주자를 내보냈어도, 설사 도루를 시도하며 2루를 훔치다 아웃 판정을 받았어도 적막이 흐른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두산~두산!”을 외치며 끈기의 상징이자 팀 마스코트인 ‘곰’이 되살아나길 기대했다. 흰색 물결이 오르내리는 파도타기 응원도 또 하나의 볼거리. 본부석에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왼쪽 스탠드부터 롯데 팬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도는 금세 끊겼지만 최소 4~5회씩은 반복하며 선수들에 경쾌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김현수와 결혼을 꿈꾼다는 여고생 4명은 교복 상의를 벗고 흰색 티셔츠를 걸친 채 ‘오빠’의 선전을 간절히 기원했다. “1차전 때도 잠실을 찾아왔어요. 암표를 구했어요. 학생이라서 많은 돈이 없다고요? 사실,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못했죠. 그래서 여름 방학 때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죄다 야구장 관람 경비에 쏟아 넣고 있어요.”

사실 승패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면 만족할 뿐. 하지만 한마음 한 뜻이 된 백곰들은 경기 초반부터 맹렬히 갈매기를 몰아치며 1차전 때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그들만의 저력과 끈기를 보여줬다.

잠실 | 남장현 기자 juna109@donga.com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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