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촘촘해진 거미손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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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전설’은 쉼표가 없다.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되는 김병지가 또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경남의 수문장으로 나서 경기당 평균 한 골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선방에 소속팀도 5연승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살아있는 전설’은 쉼표가 없다. 내년이면 마흔 살이 되는 김병지가 또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경남의 수문장으로 나서 경기당 평균 한 골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선방에 소속팀도 5연승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남의 39세 GK 김병지
후배들엔 허물없는 ‘삼촌’
24경기서 단 22실점 철벽
팀 5연승 질주 이끌어

#장면1. 프로축구 K리그 경남 FC의 팀 훈련이 한창이던 1월 함안종합운동장. 진지한 자세로 몸을 날리며 훈련하는 한 선수가 눈길을 끈다. 이글거리는 눈빛에 굳게 다문 입술. 눈과 입가에 엷게 팬 주름만이 그가 프로 18년차 베테랑 선수임을 알게 해준다.

#장면2. 5월 제주 유나이티드에 1-2로 졌을 때 경남 조광래 감독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힘없이 입을 연 조 감독의 한마디. “수비수들의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져 경기를 놓치고 있다. 그가 빨리 부상에서 돌아와 중심을 잡아줘야 할 텐데….”

#장면3. 20일 광주 상무와의 경기가 끝난 창원종합운동장. 2-1로 승리를 거둔 경남 선수단은 축제 분위기였다. 5연승을 거둔 경남은 한 달 전 14위였던 순위를 6위로 끌어올렸다. 선수들에게 연승 비결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삼촌 덕분이죠.”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39) 얘기다. K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 대기록에 5경기만을 남겨둔 그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 24경기에 나서 22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경남의 한 선수는 “병지 형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런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상대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감독님의 존재와 우리 젊은 선수들의 빠른 성장이 성적 향상의 요인입니다.”

그는 극구 부인하지만 경남은 ‘김병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플레잉 코치로 뛰는 김병지는 ‘그라운드의 지휘자’다. 수차례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수비 위치까지 조절한다. 분위기가 처질 때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도 그의 역할. 조 감독은 “김병지는 경기 흐름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 팀을 잘 리드한다”고 말했다.

김병지의 가치는 그라운드 밖에서 더욱 빛난다. 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신인들에게는 쳐다보기도 힘든 대선배지만 그는 항상 먼저 다가간다. 후배들이 ‘삼촌’이라 부르며 허물없이 조언을 구하는 것도 그의 이런 노력 덕분이다. 경남 윤덕여 코치는 “훈련 땐 누구보다 진지하고, 훈련이 끝나면 편하게 대하는 그와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젊은 선수들에겐 행운”이라 말했다.

김병지는 올 시즌을 앞두고 가족들을 서울에 두고 내려왔다. 혼자 숙소 생활을 하는 그에게 ‘외롭진 않으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얘기했다. “그라운드에서 온 힘을 쏟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어요. 가족에게 못한 부분은 나중에 몇 배로 갚아야죠.”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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