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상현 “이적 첫해 MVP로 인생 만루홈런 쏠래요”

  • 입력 2009년 9월 3일 02시 56분


“평상복 차림인데 사진 찍어도 괜찮을까요? 저는 영 어색한데요.” 프로야구 KIA의 간판 거포 김상현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두 손을 올려달라는 ‘연출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한다. 매 순간이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이승건  기자
“평상복 차림인데 사진 찍어도 괜찮을까요? 저는 영 어색한데요.” 프로야구 KIA의 간판 거포 김상현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두 손을 올려달라는 ‘연출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한다. 매 순간이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이승건 기자
‘무적 TIGER’의 추억 불러일으키는 KIA 김상현

《해태 시절 호랑이는 무적이었다. 19년간 9번이나 우승했다. 그러나 2001년 KIA로 간판을 바꾼 뒤 호랑이는 힘을 잃었다. 최근 4년 동안 2번이나 꼴찌를 했다. 그런 호랑이가 올해 다시 포효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KIA의 독주, 그 중심에 김상현(29)이 있다. 1일 롯데와의 경기를 앞둔 김상현을 부산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KIA의 아이콘이 된 그의 야구 인생을 알파벳 ‘TIGER’로 풀어봤다.》

Trade & Tears(트레이드 & 눈물)

4월 19일 일요일. 잠실에서 LG와 KIA가 맞붙었다.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던 김상현은 경기가 끝난 뒤 ‘KIA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같은 3루수인 동갑내기 정성훈이 LG로 오면서 힘들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트레이드는 뜻밖이었다. 얘기를 전해 들은 부인 유미현 씨(31)는 울음을 터뜨렸다. 2002년 7월 31일 KIA로부터 ‘LG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당시 연인이던 유 씨와 함께 눈물을 흘렸던 김상현은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LG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다음 날 승용차를 몰고 아내와 함께 광주로 내려가면서 다짐했다. ‘마지막 기회다. 놓치면 안 된다.’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Inspiration(고취, 격려)

2007년 결혼한 아내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프로 10년차에 연봉 5200만 원을 받는 그저 그런 선수인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성찬은 아니지만 꼼꼼히 영양가를 따져 식탁을 차렸고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챙겨줬다. 김상현은 “항상 아내에게 잡혀 있는 상태”라며 웃었다. 친정 팀으로 돌아온 그를 황병일 타격코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겨울 LG로 부임하면서 김상현을 지도했던 그였다. 황 코치는 다시 만난 제자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칭찬하고 때로는 충고하며 함께하는 사이에 꽁꽁 숨어 있던 제자의 잠재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실책이 잦아도 믿음을 거두지 않은 조범현 감독도 든든한 후원자였다.

Grand slam(만루홈런)

4월 26일 대구 삼성전. 김상현은 KIA로 옮긴 뒤 첫 홈런을 생애 첫 만루포로 장식했다. “시작이 만루홈런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마지막 만루홈런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평생 만루홈런을 한 번도 치지 못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아요.” 하지만 김상현은 이후 그랜드슬램 3개를 추가해 역대 시즌 최다 만루홈런 타이기록을 세웠다. 당시 11개의 홈런 가운데 4개를 주자 만루 상황에서 터뜨려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상현이 각종 타격 부문을 휩쓸 거라고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Epoch(신기원)

8월은 김상현을 위한 시간이었다. 한 달 동안 15홈런, 38타점을 쓸어 담았다. 월간 최다 홈런 보유자인 이승엽, 최다 타점 보유자인 장종훈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 “8월 29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1홈런, 2타점을 올린 뒤 타이기록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알고 나니까 아무래도 기록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는 30일 안타 2개를 때렸지만 홈런과 타점은 추가하지 못했다. 2일 현재 31홈런, 111타점, 장타율 0.616으로 모두 선두다. 이대로 간다면 올 시즌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적 첫해 3대 타격 부문(타율, 홈런, 타점)에서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MVP 역시 마찬가지다.

Ring(반지)

군산상고는 1999년 제53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 SK 이승호는 우수 투수로 뽑혔다. 김상현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우승한 건 그나마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처음 프로 유니폼을 입으면서 우승 반지 한 번 끼어 보는 게 꿈이었어요. 골든글러브도 꼭 한 번 타고 싶었고 타격 부문 타이틀도 한 개쯤은 얻고 싶었어요. 하지만 2000년 데뷔해 이듬해부터 1군 무대에서 뛰었지만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에서 뛴 적도 없는걸요.” 그러나 소망은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부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동아일보 이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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