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프리토킹] 용병고용 인플레…축구종가 딜레마

  • 입력 2009년 8월 19일 08시 09분


“받아라” “말아라” 의견분분

[1992년 프리미어리그(EPL)가 처음 출범했을 때 외국인 선수는 11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300명이 넘는 외국인 선수들이 EPL무대를 밟고 있다. 이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다른 리그와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들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는 EPL의 발전에 기여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넘쳐나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팬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팬들의 반응 엇갈려

EPL의 모든 통계자료가 담겨있는 ‘Since 1888’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을 ‘대영제국(United Kingdom)을 구성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국가대표 자격으로 뛸 수 없는 선수’라고 정의하고 있다. EPL이 잉글리시 리그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가 아닌 다른 세 지방 출신의 선수들도 자국 선수라고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 선수의 의미는 영국의 네 지방 출신을 제외한 모든 선수라고 하겠다. 맨체스터와 런던, 리버풀 등지에서 만난 축구팬들은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블랙번 팬 배트램 다시(27)는 “외국 선수들은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관중들은 이를 즐긴다”고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팬 앤드류 스톤즈(27) 역시 “외국인 선수들은 EPL에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영국 선수들은 매우 거칠고, 힘으로 하는 축구를 구사하는 데 반해 외국 선수들은 다양한 기술들을 소개해 왔고, 보다 정교한 기술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더 훌륭하고 기술적인 축구를 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외국인 선수들 없이는 팀이 성공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밖에 아스널 팬 로이드 브래들리(54)는 “난 아스널 팬이므로 당연히 외국인 선수들을 아낀다. (아스널은 1군 스쿼드 29명 중 25명이 용병이다) 능력이 충분하다면 그 선수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외국 선수의 유입은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리그로 만들었다”고 호의를 보였다.

물론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맨체스터 시티 팬 스티븐 맥롤린(28)은 “나는 팀의 과반수는 영국 선수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맨체스터 팀에 맨체스터 출신 선수가 없고, 리버풀 팀에 리버풀 출신 선수가 없다면 그건 맨체스터와 리버풀이 아니다. 외국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더 낫다고 하지만 이들은 팀에 애정과 영혼을 불어 넣지 않는다. 즉, 맨유-맨시티 라이벌 전, 또는 맨유-리버풀 전 의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정신적인 면에 초점을 뒀다. 맥롤린은 이어 맨시티의 호비뉴와 스티브 아일랜드를 예로 들며 “스티브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맨 시티 유스 출신으로 팀에 끈끈한 정이 있으며 평생 몸담고 싶어 한다고 했다. 반면 호비뉴는 팀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리버풀 팬 프랭크 하워드(43)는 “외국 선수들은 대부분 태클을 당할 때 거의 넘어지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한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것처럼 연기하는데 그것은 전통 축구가 아니라 연극일 뿐”이라며 “그것이 재주고 기술이라면 좋아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그 성공이냐 축구 종가 자부심이냐

작년 영국 의회에서는 각 팀이 소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수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노동당 밥 러셀 의원이 제안한 이 법안은 의원 23명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현재 EPL 외국 선수들의 숫자가 전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영국 축구의 지위와 재미를 떨어뜨릴 것이라며 근심을 표했다.

당시 축구협회 의장 브라이언 바윅 역시 “잉글랜드가 최근 유럽축구선수권이나 월드컵 등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가 EPL에 너무 많은 외국 선수들이 있어 자국 선수들이 발전 할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법안 통과를 지지했다. 이 제안은 ‘스포츠에만 고용법 예외를 둘 수는 없다’는 반대에 부딪혔지만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유윅 대학교 스포츠 연구학과 스콧 플레밍 교수는 외국 선수가 급격히 증가한 현상에 대해 에릭 칸토나가 활약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영국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마 그 시절부터 EPL이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지 않았나 싶다. 이런 과정이 외국 선수 고용에 박차를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EPL은 대기업들의 막대한 투자를 받고 있고, 이로써 클럽들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게 됐다. 그들은 비단 선수들뿐만 아니라 외국 감독과 코치들에게도 손을 뻗었다. 과거에는 영국인 정신을 강조했지만 이젠 외국 스태프의 훈련법이나 경기 방식을 포용하며 외국 선수들까지 반감 없이 영입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선수들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 층을 확보한 EPL. 그로 인한 수입도 막대하다. 외국 선수들은 리그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클럽의 비즈니스 측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그의 성공과 축구 종가의 자부심 사이에서 영국인들은 아직까지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맨체스터 | 전지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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