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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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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1970년대 전북 김제군 청하면 대청리의 시골마을. 소형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야구 경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9회말이 끝날 때까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마법의 게임. 원광고 2학년 때인 1975년 전주 야구장에서 처음 실업야구 시범경기를 봤다. 그렇게 야구와 사랑에 빠졌다.
1978년 명지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미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황금사자기 등 고교대회가 열릴 때면 아예 동대문야구장에서 살았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다 본 적도 있었다. 프로야구가 탄생한 이듬해인 1983년 2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기록강습회에 참가한 뒤 그해 KBO에 입사했다. 기록, 운영, 홍보팀장, 총괄운영본부장을 거쳐 26년 만에 프로야구 실무 책임자가 됐다. 이상일 사무총장(51) 얘기다.
○ 프로야구 관중 600만 명 시대를 향해
사무총장이 된 지 이제 한 달 남짓. 그의 소감은 이랬다. “총재를 보좌하고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일은 그대로예요. 그동안 6명의 사무총장을 모시면서 배운 노하우를 야구 발전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이 총장은 아직도 통계자료를 챙긴다. 컴퓨터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 매일 밤을 새우며 기록을 정리하던 버릇 때문이다. 그의 집무실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해까지 관중 추이 그래픽 판. 그래프가 가장 높은 곳은 1995년(541만 명), 그리고 지난해(526만 명)였다. 올해는 13일 현재 443만4796명의 관중이 들었다.
이 총장은 “남은 123경기에서 올 시즌 평균 관중(1만843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역대 최다인 570만 명이 될 것”이라며 “포스트시즌 관중까지 합하면 600만 관중 시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성숙해야
“글러브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한 야구용품 업체 사장은 이 총장에게 경제 불황 속에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1400명 수준이던 유소년 야구 선수가 올해는 30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야구 열기가 뜨거운 덕분이다.
그러나 열기에 비해 하드웨어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이 총장의 생각이다. 돔구장 건설은 물론이고 기존 구장 리모델링과 대전, 대구, 광주 등 40∼60년 된 노후 구장이 있는 곳은 새 구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야구발전실행위원회의 비전이 마련되면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 2군 선수의 업그레이드 구상
이 총장은 야구계의 각종 현안을 유연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프로야구 선수협회가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한 것과 관련해 “선수협보다 선수를 더 배려하는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선수 복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재능은 있지만 기회를 못 잡은 선수들이 일정 기간 2군에서 뛰면 다른 팀 1군에서 뛸 기회를 주는 제도도 구상 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야구가 너무 재미있다”는 이 총장. 그는 야구의 매력을 묻자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말을 인용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