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두시간째 첨벙첨벙…“내가 지금 울고있니?”

입력 2009-07-30 08:41수정 2009-09-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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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기 전날, 더 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틈틈이 ‘바람의 신’에게 간곡한 기원을 올린다. 가장 싫어하는 노래는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 다오.’

이들은 바로, 윈드서핑 마니아다.

한 여름의 무더위를 녹일 심산으로 윈드서핑의 문을 두드린 28일. 하지만 이날따라 한강은 호수처럼 고요해 보였다. ‘거친 파도 사이를 누비고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서울 뚝섬 윈드서핑장을 찾았다.

○물에 빠질 각오부터

“처음에는 오히려 이런 날씨가 좋아요. 초보자가 배우기는 딱 이네요.” 뚝섬지구 윈드서핑장 ‘자유(FREE IS)’ 17호 이동준 대표의 첫 마디. 바람이 거세게 불면, 빨리 움직이기에는 좋지만 균형을 잡기 어렵기 때문.

“저도, 선글라스 가져올 것을 그랬나 봐요….” 모든 운동은 폼이 나야 제 맛. 윈드서핑처럼 고가 스포츠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표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선글라스가 탐났다.

“어유, 잃어버리시려고요? 처음에는 그런 분들도 많아요.” 초보자에게 필요한 것은 선글라스보다 물안경. 물 속에 여러 번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한강 바닥에는 지금도 겉멋에 취했던 이들의 선글라스가 곳곳에 숨어있다.

○복잡한 이론 강의에 하품만

복장은 꽉 끼는 보온 슈트. 슈트에는 부력이 있어, 유사시 몸을 물에 띄우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 위에 구명조끼를 덧입으면 준비 완료. 하지만 한 강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여러 관문이 남아있었다.

윈드서핑은 과학적인 스포츠. 바람과 돛의 속성을 잘 알아야만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론 교육은 필수. 윈드서핑 경력 10년의 정철욱 대리가 강사를 자청했다.

윈드서핑은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컴퓨터 기사인 호일 슈와이스와 항해사 출신의 제임스 드레이크가 공동으로 발명한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이후 17년만인 1984년 LA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탄생 이후 가장 빨리 올림픽에 입성한 스포츠.

파도타기 보드와 요트의 돛(Sail)을 합친 것이 윈드서핑의 골자다. 보통 일반적인 배에는 마스트(mast)라고 불리는 돛 기둥이 수직으로 고정돼 있다. 하지만 윈드서핑에 쓰이는 세일보드(Sailboard)의 돛 기둥은 유니버설 조인트(universal joint)라 불리는 연결쇠를 사용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돛은 엔진과 키의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된다. 파도에 대한 판의 균형과, 돛의 바람에 대한 균형을 조정해 가는 것이 윈드서핑 기술의 핵심이다.

자전거의 작동원리를 아무리 잘 알아도, 자전거를 안 타보면 못타는 법. 점점 더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칠판 앞에서면 하품부터 나오기는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강은 더럽다는 편견을 버려라

지상에 세일보드를 놓고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뒤, 드디어 입수. 초보자용 보드는 보드위에서 균형을 잡기 용이하도록 폭이 넓다.

보드 위에 돛은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물 위에 보드를 띄우면, 돛은 항상 물 속에 잠겨 있다. 업홀라인(Up Hauled Line)이라고 부르는 줄을 당겨 돛을 세우는 일이 첫 번째. 하지만 줄을 당기기도 전에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첨벙첨벙.’ 물 속에 빠질 때마다 입안으로 한강물이 들어온다. 가끔씩 부유물도 느껴진다. 심지어 벌레 한 마리까지. 뱉고, 또 삼키고를 수 십 차례 반복. 물에 빠지는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한강물을 들이마신다는 것이 찜찜하다.

몸을 사리자, 대번에 날아오는 이윤재 강사의 일침. “빠지는 것을 무서워하시면 안돼요. 물 하나도 안 더럽다니까요.” 뚝섬 근처는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줄기에서 상류지역. “이곳을 지나 청계천, 중랑천 등이 합류하면서 조금씩 물이 흐릿해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정철욱 대리는 “며칠 전, 비가 많이 와서 물이 잠시 뿌연 것일 뿐”이라면서 “이곳에서 10년 넘게 윈드서핑을 해왔지만, 피부병 걸린 사람 한 번 못 봤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커다란 잉어가 보드위로 날아드는 경우까지 있다. 마음 놓고, 다시 한 번 풍덩.

○강북에서 강남이동, 차보다 윈드서핑이 빨라

이대로 가다가는 돛 한 번 못 세우고, 돌아갈 판. 윈드서핑은 역시 어려운 운동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때 마침,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들도 윈드서핑을 배우고 있었다. 제법 멋진 자세로 항해하는 한 어린이에게 물었다. “야, 너 잘 타는구나. 얼마나 배웠니?”, “저요? 어제부터 배웠는데요….” 오기 발동.

가까스로 돛을 세우고, 한강 위를 항해. 하지만 균형을 잡을 때마다 바람은 잠잠해지고, 보드는 거북이 헤엄이다. “왜 제가 돛을 세우기만 하면, 바람이 안 불죠?”, “바람이 안 불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신 것이죠.” 부끄럽기는 했지만 이윤재 강사의 정확한 분석이었다.

마침 한강 한가운데서 한 보드 세일러가 돛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멋진 항해를 하고 있었다. 옆으로는 지나가는 수상택시. 과연 윈드서핑은 동력선박보다 빠를 수 있을까. 윈드서핑의 순간 최고속력은 100km/h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무동력으로 움직이는 것 중 가장 빠른 속력. 이 정도로 항해하다가 물에 빠지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헬멧을 착용해야할 정도다.

이윤재 강사는 “바람만 잘 받으면 20초 이내에 한강을 가로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 자동차로 꽉 들어찬 잠실대교를 이용하느니, 윈드서핑이 낫다. 마니아들은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슬슬 산책을 나갔다 오기도 한다고. 고(故) 권희범(전 대한요트협회 심판위원)씨가 1980년 8시간23분만에 대한해협(부산-대마도)을 윈드서핑으로 횡단한 일도 있다.

○겨우 30m 나갔는데…. 모터보트의 습격

입수 2시간 만에 겨우 30m 가량 나가는데 성공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쓰러지면 안 된다. 균형을 잡기 위해 양발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강 건너편에서는 잠실종합운동장이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보드가 나가지를 않는다.

“이제, 돌아오세요.” 보드를 자세히 보니, 줄이 매달려 있었다. 초심자의 안전을 위한 장치였다. “더 이상 나가시면 제가 나중에 못 끌고 오잖아요.” 처음부터 30m운명이었던 셈.

낙담할 겨를도 없었다. 모터보트 한대가 굉음을 내고 지나가자 파도가 엄습. 파고는 불과 수십cm에 불과했지만, 초보자에게는 집채 만한 크기로 다가왔다. 또 한 번 첨벙. 그리고 허우적허우적. 우는 아이 뺨때리는 격이었다.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

보드세일을 타고 한강을 유유자적 거닐면, 소동파가 적벽을 유람하듯 시상이 떠오를 것 같단 생각은 착각이었다. 일단, 초보자들은 갈증이 심한 상태에서 윈드서핑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윈드서핑 인구가 많아진다면, 한강 수심이 얕아지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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