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여기는 애리조나!] 봉중근 ‘이치로 봉쇄’ 비밀공개

  • 입력 2009년 3월 11일 07시 47분


“이치로 타석 때 주심에게 항의한 것은 약속된 작전이었다.”

9일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A조 1위 결정전의 영웅은 단연 봉중근(29·LG)이다. 선발투수로 나서 5.1이닝 3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1-0의 짜릿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특히 효과적이고도 공격적인 투구로 6회 1사까지 경기를 이끌어준 그의 혼신의 역투는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곧바로 ‘신(新) 일본킬러’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팀 양상문 투수코치는 9일 경기 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봉중근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을 털어놨다. 봉중근이 1회말 마운드에 서서 첫 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상대로 초구를 던지기 전 주심에게 ‘관중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경기에 방해된다’며 항의한 것은 사전에 이미 약속된 작전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치로가 타석에 나설 때마다 광적인 일본팬들이 디지털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는 사실을 읽어내고 흐름을 끊겠다는 전략. 7일 이치로에 당한 한국팀은 이치로 봉쇄가 일본전 승부의 키포인트로 내다봤다. 그리고 그 작전은 기막히게 주효했다. 봉중근은 이치로를 3타수 무안타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양 코치는 “투수가 주도권을 잡고 게임을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중근이가 노련하게 흐름을 끊고 이치로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고 밝혔다. 4회 견제구가 보크선언될 때 2루심에 항의한 것은 스스로의 감정조절과 호흡을 가다듬기 위한 차원이었다. 결국 봉중근의 투구도 빼어났지만 지략의 승리로도 평가할 수 있다.

봉중근 선발내정 뒷얘기도 흥미롭다. 김성한 수석코치에 따르면 7일 일본전에서 콜드게임패를 당할 때 봉중근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경기 내내 덕아웃을 왔다갔다하며 “일본은 내가 눌러버릴 수 있는데, 다 죽여버릴 수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김 코치는 그의 투지를 본 뒤 다음날 만나 “아예 가슴 양쪽에 ‘선발’이라고 써놓고 감독님 앞에 돌아다녀라”며 웃었다. 그리고는 코칭스태프 회의를 통해 9일 봉중근이 최종 낙점됐다.

‘걸리면 베겠다’는 의지를 담고 전승우승을 목표로 출범한 사무라이 JAPAN, 그러나 그 칼날은 봉중근의 공에 무참하게 뭉개졌다. 7일 콜드게임패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던 팬들은 봉중근을 두고 일본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 빗대 ‘의사 봉중근’으로 부르고 있다.

‘신 일본킬러’, ‘신 일본 저격수’ 봉중근의 등장에 한일 야구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피닉스(미 애리조나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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