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아, 천국에선 가족 걱정 잊으렴”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8시 16분


90년대의 겨울을 녹이던 농구팬들의 뜨거운 애정은 그 시절 주역들의 가슴에 훈훈한 온기가 되어 남아있다. 그들은 세상을 먼저 등 진 동료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93년 명문 현대전자에 입단한 고(故) 박재현은 식스맨의 대명사. 찰거머리 수비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가끔씩 터트리는 3점포도 위력적이었다. 프로출범 이후 현대소속으로 97-98, 98-99시즌 2연패에 기여한 박재현은 2001년, 모비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지도자생활을 시작하며 순탄한 농구인생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2003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위암판정이었다. 박재현은 2004년 프로농구 올스타전에 초청 돼 “다시 지도자로서 코트에 서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해 11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따금씩 술자리에서 고인을 추억하던 동료들은 11월, 가슴 아픈 사연을 접했다. 박재현의 부인과 열살도 채 안된 아들·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업팀 현대전자와 프로팀 현대 다이넷에서 박재현과 함께 뛰었던 동료들이 뭉쳤다. 이들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수 십 만원씩을 털어 총 700만원을 박재현의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의리의 농구인 24인’ 가운데는 현직 중고교·대학·남여프로농구 팀 지도자와 슈퍼 스타급 현역선수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알려지려고 한 일이 아니다”라며 한사코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한 지도자는 “(박)재현이는 선수 이전에 선배들에게는 존중받고, 후배들에게는 존경받는 훌륭한 인간이었다”면서 도리어 “이제야 뜻을 모으게 돼 부끄럽다”며 고개를 묻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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