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두산 김현수와 가족의 힘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8시 28분


“매일 경기장 지켜주신 부모님 이제 불방망이로 효도할게요”

두산 김현수의 아버지 김진경(58) 씨는 플레이오프 1·2차전을 모두 잠실구장에서 지켜봤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어머니 이복자(56) 씨, 그리고 누나 미선(30) 씨와 형 명수(28) 씨 가족도 함께 왔습니다. 김현수가 “인형 같다”고 예뻐하는 조카들은 푸른 잔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삼촌이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립니다.

김현수는 집안의 늦둥이입니다. 바로 위 형과 여덟 살 차이가 나거든요. 그만큼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밝고 낙천적인 성격은 화목한 가족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스로도 “우리 가족은 모두가 친구처럼 지내요”라고 어깨를 으쓱하곤 합니다.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한 김 씨가 아들을 매일 야구장에 출퇴근 시켜준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얘깁니다. 현수를 내려준 뒤 아내와 함께 야구를 보는 게 김 씨의 일과 중 하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게 있습니다. 김 씨는 매 경기 꼬박꼬박 입장권을 삽니다. 선수 가족이라면 구단에 공짜 입장권을 부탁할 만도 한데, 김 씨는 꼭 돈을 치릅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팬들의 몫인데 내가 마음대로 쓸 수는 없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예전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난 아들 때문이 아니라 야구를 보러 오기 때문에” 그래야 한답니다.

사실 김 씨는 LG 팬이었습니다. 전신 MBC 때부터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하지만 2006년부터 두산으로 ‘변심’했습니다. “아들이 두산에 취직했으니 별 수 있습니까. 허허.” 앉아있던 자리도 절묘합니다. 오른쪽 외야 벽에 커다랗게 붙은 ‘최강두산’ 글자. 그 중 ‘두’자 바로 아래가 김현수 가족의 사랑방입니다.

모두가 야구를 좋아하는 김현수 가족에게도 올해는 꿈만 같은 해입니다. “현수가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지요. 장효조 같은 선수들과 현수가 비교되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그래도 집에서는 야구의 ‘ㅇ’자도 꺼내지 않습니다. 김현수가 집에서라도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려는 가족의 배려입니다. 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 뭘 잘 못해요. 여기저기서 워낙 우리 현수를 치켜세우니 자신도 부담이 심한가봐요. 복잡하게 이것저것 계산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평소처럼 해줬으면 좋겠어요.” 앞장서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을 바라보며 김 씨는 속으로 이렇게 빌었습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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