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두산 이용찬의 도전장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8시 37분


19살 루키의 정면승부…“상대는 바로 나!”

TV 리모콘을 집어들다 그만둡니다. 차마 두산 경기는 못보겠더랍니다. 당장이라도 뛰고 싶어 ‘열불’이 났거든요.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잠깐 스코어만 살펴봅니다. 그렇게 프로 첫 포스트시즌을 보냈습니다. 두산 이용찬(19·사진) 얘깁니다.

이용찬은 지난해 입단했습니다. 임태훈과 나란히 4억원대 계약금을 받았습니다. 당당한 체격에 묵직한 구위. 두산은 내심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꿈꿉니다. 그런데 첫 마무리훈련부터 팔꿈치에 탈이 납니다. 잠실구장 마운드 한번 못밟아보고 ‘시즌 종료’랍니다. 도리가 없습니다.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합니다. 그 사이 동기 임태훈은 신인상을 거머쥡니다. 박수는 쳤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너무 부러웠답니다.

그래서 더 야심차게 새 시즌을 맞이합니다. 4월 26일 대전구장. 첫 등판부터 1.2이닝 무안타 무실점. 다들 ‘비밀병기’라고 야단법석입니다. 어깨가 으쓱합니다. 그런데 자꾸 팔꿈치가 아픈 것 같습니다. 수술 부위에 탈이 났나 싶어 덜컥 불안해집니다. “그거 아세요? 한번 아프고 나면, 사람이 소심해져요.”

그쪽에 자꾸 신경을 쏟다보니 이번엔 어깨가 쑤십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2주 정도 치료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3주, 4주, 한달, 두달. 차도가 안 보입니다. 의욕도 덩달아 바닥을 칩니다. “두번째는 정말 힘들더군요. 난 왜 자꾸 아플까,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그러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걸 배웠어요.”

4개월이 지났습니다. 9월 28일 잠실구장, 상대는 다름 아닌 삼성. 다시 마운드에 오르려니 심장박동이 빨라지더랍니다. ‘잘 던졌냐’고 가볍게 물었더니 한 타석, 한 타석을 술술 풀어놓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안타를 맞았고, 뭘 던져 병살타를 유도했고, 어떻게 삼진을 잡았는지 전부 다요. 그때 비로소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오프 엔트리가 발표된 13일에도 그는 명단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포함될 거라 믿었습니다. “감독님이 제 뒤에 있겠다고 하셨어요. 잘 하면 실력이 두배가 되는 거고, 못해도 본전이니까 절대 쫄지 말라고요.”

이용찬은 당찹니다. 정면승부가 철칙이고,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곱상한 외모 뒤에는 야생마처럼 펄펄 끓는 활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첫 가을잔치 도전장을 던집니다. 그 안에 적힌 대결 상대의 이름.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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