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jing 못다 한 이야기]<7>역도 사재혁

  • 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사재혁이 지난달 13일 베이징 올림픽 역도 남자 77kg급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 역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병관 이후 처음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사재혁이 지난달 13일 베이징 올림픽 역도 남자 77kg급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 역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병관 이후 처음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행사 참석하는 게 운동보다 더 힘들었어요.”

지난달 13일 2008 베이징 올림픽 역도 남자 77kg급에서 금빛 바벨을 들어올린 사재혁(23·강원도청)은 25일 귀국 후 거의 매일 행사장에 불려 다녔다. 방송 출연 제의도 쏟아졌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운동을 거의 못해 팔과 다리의 근육이 줄어들었다. 결국 그는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았다.

사재혁은 1일 조용히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는 “바벨을 잡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세계신기록을 깨는 게 목표였죠.”

그는 베이징에서 세계신기록은 깨지 못했다. 하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전병관(56kg급)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을 따 냈다.

사재혁이 한국 남자 역도의 자존심을 되찾기까지는 고통도 많았다. 역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에 시달렸다. 2001년부터 네 차례나 몸에 메스를 댔다. 오른 무릎 수술 한 번, 왼 어깨 두 번, 오른 손목 한 번. 보통 선수 같았으면 운동을 포기했음 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재혁은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시련을 딛고 따낸 금메달이 더욱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재혁(史載赫)과 ‘싸군’

사재혁의 성(姓)은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어릴 적에는 ‘죽을 사’ ‘사기꾼’ 등 놀림도 많이 당했다. 때로는 ‘나는 왜 이런 성씨를 가져야 하나’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재혁은 ‘싸군’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의 성을 강하게 발음한 것이다. ‘사재혁 군’ 혹은 ‘사나이답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역사(力士)로 인정받으면서 그를 놀리는 사람은 사라졌다.

사재혁이 다시 바벨을 잡았다. 10월 전국체전에서 강원도 대표 ‘싸군’의 힘을 보여줄 작정이다.

“77kg급은 국내외에 경쟁자가 많아요. 방심할 틈이 없죠. 내년 세계선수권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바벨을 들고 싶어요.”

○ 역전 드라마

사재혁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는 인상에서 163kg을 들어 3위에 그쳤다. 1위 중국 리훙리(168kg)에게 5kg이나 뒤졌다.

사재혁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재혁아, 너는 할 수 있어. 몇 번을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서지 않았니.’

용상에서 리훙리는 198kg을 드는 데 그쳤다. 사재혁은 1차 시기에 201kg, 2차 시기에 203kg을 들어 인상 용상 합계 366kg으로 리훙리와 균형을 맞췄다.

금메달은 사재혁의 것이었다. 같은 무게를 들었을 경우 체중이 가벼운 선수가 이긴다. 사재혁의 몸무게는 76.46kg으로 리훙리(76.91kg)보다 450g 가벼웠다.

사재혁은 욕심을 냈다. 용상 세계기록인 210kg을 넘고 싶었다. 3차 시기에 211kg을 신청했다. 태릉선수촌에서 연습할 때 211kg을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바벨을 들어올리다 잠시 균형을 잃은 탓이다.

그래도 사재혁은 웃었다. 소중한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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