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 태릉사격장 대못질

  • 입력 2008년 7월 15일 03시 04분


문화재청, 철거 현수막 설치하며 올림픽 조형물 훼손

“복더위 속에 시원한 응원 한마디가 아쉬운 판에….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변경수 사격대표팀 감독은 허탈한 듯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다음 달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전북 임실군 종합사격장에서 훈련을 하다 14일 지인들로부터 서울 태릉사격장 안에 철거를 예고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내걸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사격 경기가 열렸던 것을 기념하는 대리석 조형물에까지 콘크리트 대못질을 했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올림픽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기에 사기를 꺾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행여 고생하고 있는 선수들이 알게 돼 의욕을 잃을까 염려됩니다.”

대한사격연맹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사격연맹 직원들이 쉬는 지난 주말을 틈타 태릉사격장 안 몇 곳에 ‘9월 1일부터 철거하여 훼손된 지형 및 왕릉 경관림을 복구 복원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했다.

사격연맹 정범식 과장은 “올림픽 이후 철거를 앞두고 사전 공지 차원인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인 서울 올림픽 조형물을 훼손하면서까지 서두른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사격의 요람인 태릉사격장은 그동안 철거를 둘러싼 갈등을 겪어 왔다. 문화재청이 왕릉 복원을 위해 지난해 10월 1일 10m 공기소총 사대를 제외한 모든 시설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면서 사격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사격인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데다 마땅한 대체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철거를 강행하려는 조치에 반발하며 당시 정부대전청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사격장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면서 문화재청과 사격연맹은 1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는 8월 말까지만 태릉사격장을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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