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이 미워”… 낯선 신발에 2연패 물거품

  • 입력 2008년 6월 9일 09시 19분


‘작은 거인’,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역도 천재.’ 어떤 수식어로도 전병관(39·국가대표상비군감독)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15세에 역대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은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과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1991년 세계선수권, 1992년 아시아선수권을 차례로 석권하며 그랜드슬래머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전병관에게도 아쉬움의 순간이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아무도 올림픽 2연패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상에서 135kg을 기록한 뒤, 주특기인 용상에서 1차시기 165kg, 2차시기 167.5kg, 3차시기 170kg을 모두 실패했다. 평소보다 저조한 기록이라 충격은 컸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새신’에 있었다.

1992년 금메달 이후 목표의식을 잃었던 전병관은 ‘체중의 3배를 들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올림픽에서 나임 술레이마눌루가 인간한계를 돌파한 적이 있었지만 약물복용으로 의미가 퇴색됐었다. 전병관은 0.1mm라도 양발의 높이 차가 있으면 힘이 골고루 분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술연마와 함께 역도화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형역도화가 탄생했지만 올림픽 개막 20일을 앞두고서야 전병관의 손에 들어왔다. 적응기간이 모자랐다. 전병관도 고민을 했지만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세계신기록과 인간한계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신발을 갈아 신었다. 하지만 ‘낯선 신발’은 과학의 효험을 주지 못했다.

전병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금메달은 이미 따봤기 때문에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다”며 웃었다. 금메달은 물거품됐지만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역도를 과학으로 승화시킨 전병관은 2007년 한국체육대학에서 ‘역도 인상 경기시 성패 동작의 운동학적 요인 비교와 훈련 프로그램 개발’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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